[경인일보=]좁은 길 굽이굽이 우리는 평창군 이곡리로 향하고 있었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만든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설치된 ㄱ스튜디오라는 곳이다. 그 곳의 대표인 교수님 제자와의 인연으로 클래식 음악회를 농촌 마을 사람들을 위해 현장기획을 했다. 처음에는 농촌에 얼마나 많은 관객이 모일지, 또 마을 사람들의 호응이 어떨지 걱정 속에서 클래식 음악회를 준비했다. 도시에서 하는 음악회는 보통 7시 반에 하지만 농어촌에서 7시라는 시각은 많은 여성들과 할머니들의 발목을 잡게 되는 시간이 되기 때문에 4~5시를 선택해야 하는 특수성을 이 음악회를 통해 알게 되었다. 우리는 농어촌의 상황을 생각하여 5시 반에 음악회를 열었고, 도시에서 하는 성악 클래식프로그램으로 마을 사람들을 기다렸다. 다행히 80여명의 마을사람들이 음악회에 참석했다. 좀 무거운 프로그램이 아닌가라는 근심을 갖고 음악회를 시작했다. 첫 곡으로 중창의 모든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민요풍의 경복궁 타령을 불렀고, 첫 곡을 듣는 할머니의 반응에 우리는 바로 후회했다. 손자 손을 잡으며 흥겨운 민요 가락인 음악선율에 몸을 싣고, 손자와 함께 박수치는 모습에 음악회의 성공을 예견할 수가 있었다. 더욱이 마니아들만 듣는다는 오페라 리골레토의 아리아 Cortigaino vil razza…를 필자가 부를 때 할머님들의 눈과 어린아이들의 집중력은 잊을 수가 없었고, 농어촌관객의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에 아니 놀랄 수가 없었다. 서울의 오페라 하우스를 연상케 하는 순간이었다. 농어촌 관객은 클래식에 깊은 갈증을 느껴 우리를 기다린 것이다. 무대와 객석은 하나가 되기에 충분했고 하루의 근심을 잊은 채 농어촌마을 주민은 행복한 문화체험을 했다. 또한 다문화 가정을 위하여 두 곡의 팝송도 준비했는데, 결혼이민 여성들의 감성을 자극하여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음악회를 마친 후에 한 할머니께서 필자의 손을 잡으시며 감사하다는 말과 만원을 내 손에 쥐어 주셨다. 본인은 그 자리에서 충격과 감동을 받아 움직일 수가 없었고, 내 생애의 가장 값지고 비싼 티켓 값을 경험했다. 할머니의 감사의 표시에 25년 오페라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간직하게 되었다. 또한 손자의 손을 잡고 클래식 음악을 듣는 할머님의 아름다움에 큰 희망을 느끼는 기회였다. 마을 사람들이 갈급했던 클래식 문화를 늦게 보급한 것을 후회한 음악회가 되었고, 이번 음악회를 통해 농어촌에 있는 사람들이 클래식 문화를 외면한다는 편견을 없앨 수 있었다. 그 분들도 클래식을 알고 느낄 수 있으며 그에 대한 감사와 그에 대한 가치를 알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성악가를 보며 신기해하고 즐거워하는 마을사람들과 음악으로 다문화를 포함한 모든 마을 사람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이루어내는 음악회를 통해 이를 후원한 농협문화복지재단의 임원들과 우리는 폐교된 학교의 재문화공간화의 중요성과 전통 클래식공연의 지원이 시급함을 느꼈다. 우리는 서울로 향하면서 농어촌 문화에 대해 많은 토론과 비전을 마음으로 다졌다.
예술의 대중화란 목표 아래 우리는 수많은 문화 정책을 펼쳐왔다. 농어촌에 계시는 분들도 대중일진대 왜 그들은 이런 혜택을 받지 못했을까 생각해 본다. 폐쇄된 문화, 도시로 떠나버린 사람들로 인해 텅 빈 마을, 과연 우리는 농어촌 문화와 도시 문화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우리는 농어촌을 생각한다면서 군단위의 음악회를 대체적으로 7시에 개최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밥을 짓기 위해 집을 지켜야 하는 농어촌가족들이 가끔 군에서 열리는 음악회를 감상하기는 매우 힘든 상황이 된다. 많은 농어촌 문화지원이 있지만 음악회를 위한 음악회가 아니고 농어촌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들 때 클래식 선진화임을 밝히고 싶다. 감히 필자는 이종 간의 문화적 결합을 제의한다. 도시민이 막걸리를 찾는 시대에 농어민이 클래식 문화와 결합할 때이며, 와인과 농어민의 결합을 기대할 때이다. 도시와 농어촌 문화의 양극화! 농어촌사람들이 와인과 클래식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부끄럽게 하는 늦은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