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보건대 우리나라가 외환보유액 부족으로 가장 큰 어려움을 겪었던 시기는 1997년 외환위기 때였다. 당시 일부 대기업들이 과도한 차입 경영으로 도산에 직면한 가운데 이와 연계된 금융기관들의 부실이 우려되자, 해외투자자들은 국내 투자자금을 앞다투어 회수하고 단기대여금의 연장을 불허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경상거래 결제대금, 단기외채 상환자금이 부족해지고 급기야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이 고갈되는 상황으로까지 내몰리게 되었다. 결국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 우리 경제는 혹독한 구조조정의 시기를 겪게 된다.
이러한 경험을 교훈삼아 한국은행은 2008년까지 세계 6위에 해당하는 2천400억달러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축적하였으나, 그해 9월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계기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또 외국 자본이 급속히 유출되면서 국가부도 가능성 지표인 CDS 스프레드(Credit Default Swap spread)와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는 등 외환시장이 극도로 불안정해졌다. 정책당국인 한국은행 등이 FRB와 200억달러 상당의 통화스왑 체결에 성공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외환시장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었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보듯이 자본 자유화로 국내외 자본이동이 자유롭고 특히 국내 금융시장에 외국자본이 대거 유입된 상황하에서는 외국자본의 유출에 대비하기 위한 최후 보루로서 외환보유액이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예상치 못한 큰 위기에 대처할 수 있을 만큼 현재의 한국은행 외환보유액은 충분한 규모인가? 아니면 외환보유액을 무조건 더 많이 쌓을 것인가?
이에 대한 논란은 오래 전부터 계속되어 왔으며 현재도 진행중이다.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경상거래 대금, 유동외채 등의 변수를 적용한 계량적 분석방법이나 옵션가격 결정 모형 등을 이용한 적정 외환보유액 규모 산출 노력이 지속되고 있으나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 금융시장의 특성과 지정학적 리스크를 모두 반영한 정답을 찾기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주지하다시피 충분한 외환보유액은 위기대응 능력과 대외신인도 제고에 기여하고 대외로부터의 차입 비용을 줄이는 편익을 가져다 주지만, 지나치게 클 경우 물가안정비용과 기회비용 등 여러가지 부담이 수반된다. 왜냐하면 통화당국인 한국은행은 외화매입 과정에서 늘어난 통화량 흡수를 위해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하고 이에 대한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데, 통상 외환보유액의 해외운용 수익률보다 통화안정증권의 이자율이 높으므로 그 차이만큼 금융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적정 외환보유액 수준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지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금융안전망 구축 및 외채구조 개선 등을 통해 외환시장 불안정성을 줄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정책당국은 외국 단기 투자자금의 유출입, 국내 은행들의 단기외채 변동상황, 유로국가들의 재정난 동향 등 국내·외 금융시장을 면밀히 모니터링함과 더불어 선물환 포지션 한도 관리, 유동성 비율규제 등의 거시건전성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또한 최근 도입 검토중인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방안 등 외국투자자금의 급속한 유출입을 억제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우리나라가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G20 등 국제회의 등에서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 논의도 지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금융기관 및 기업도 적정한 규모의 외자 조달 및 재무구조의 건전성 제고를 통해 위기대응 능력을 높여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