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연평도 공격 이후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외교적 움직임이 전방위로 펼쳐지고 있다.

   연평도 포격도발 직후 실시된 한미연합훈련에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를 파견해 대북 억지력 강화를 상징적으로 과시한데 그치지 않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는 군사.외교 파트의 고위급 움직임을 연쇄적, 집중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전화통화(5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주도한 워싱턴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7일), 마이크 멀린 합참의장 긴급 방한(8일) 등이 이어졌다.

   또 제임스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을 위시한 제프리 베이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보좌관,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성 김 6자회담 특사 등 고위급 대표단이 내주 14∼17일 중국으로 날아간다.

   미국 외교.국방을 좌우하는 중추 멤버들이 총동원되는 모양새인데다, 그 움직임의 속도도 급박해 오바마 행정부가 이번 사태에 임하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8일 "북한의 연평도 도발 이후 백악관 NSC가 미국의 여러 외교 현안중 한반도 문제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논의하고 있고, 또 중국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이냐를 놓고 집중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천안함 도발 때에 이어 이번 연평도 공격 이후에도 중국이 북한의 도발에 대해 책임을 묻거나 비난하는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태도를 고수하자,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북 외교력의 초점을 중국에 집중시키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클린턴 장관의 이니셔티브로 7일 열린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도 초점은 중국에 대한 압박이었다.

   미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인 쉴라 스미스는 8일 "3국 외교장관회담의 가장 주목되는 메시지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며 북한의 도발 중지와 한반도 평화.안정을 위해 북한의 '특별한 동맹국'인 중국에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촉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연평도 사건후 북한의 책임을 묻지 않은 채 6자회담 수석대표 긴급회동을 해법으로 내놓은데 대해, 한.미.일이 "대화할 시기가 아니다"고 거절하며 워싱턴에서 외교수뇌부 긴급회동을 가진 것 자체가 중국에 대한 외교적 압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곧바로 한국으로 날아간 멀린 미 합참의장이 한민구 합참의장과 회담한 뒤 북한의 도발에 대한 한국의 자위권 행사를 존중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며 군사적 압박까지 가세시켰다.

   이러한 움직임은 `중국이 북한의 도발을 자제시키는 역할을 못할 경우 중국과 북한 인근 지역에 미군이 언제든지 출동한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이다.

   중국은 미군의 서해 군사훈련 참여에 반발해왔지만, `채찍'을 휘두르지 않음으로써 북한 도발을 용인하고 있다는 국제적 비판에 노출되면서 이러한 미국의 공세적인 태도에 `항의'할 입지가 약화되고 있는 점을 파고드는 접근으로 볼 수 있다.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 등 고위급 대표단의 방중에서는 미.중 관계 전반의 협력구도와 맞물려 북한 문제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중(對中) 정책을 주도하는 핵심 외교 당국자들이 대표단에 포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외교적 압박의 방향이 주목된다.

   특히 베이더 NSC 보좌관이 포함돼 있어 내년 1월로 예정된 후진타오 주석의 방미를 계기로 한 미.중 정상회담 문제까지도 논의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워싱턴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 문제를 주 이슈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부상하고 있다.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은 7일 미.중관계를 주제로 열린 미국진보센터(CAP) 세미나에 참석해 "중국은 미국과 가까운 파트너십을, 미국도 여러 분야에서 중국의 협력을 필요로 하지만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 북한 도발 문제가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 토론토 미.중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자제력을 발휘하는 것과 계속되는 문제들에 의도적으로 눈감는 것은 다르다"며 후진타오 주석에게 직설적 표현으로 중국의 입장을 비판한 점에 비춰볼 때 워싱턴에서 열리는 이번 회담에서 더 강도높은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후진타오 주석의 방미를 통해 전략적 성과를 기대하는 중국으로서는 북한 문제로 비롯된 대립각이 미.중 정상회담에서 부각되는 것은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북한의 잇따른 도발을 거치면서 최근 복잡다단한 미.중 관계 현안중 다소 후순위로 밀려있던 북한 문제가 최고 이슈로 부상한 것이 워싱턴 분위기이다. 북한 문제를 풀 외교적 해법은 중국에 달려있다는 판단때문이다.

   싱크탱크 미국진보센터가 스타인버그 부장관을 초청해 개최한 7일 미.중관계 세미나에서 기후변화, 환율문제, 이란핵문제 등 여러 현안은 파묻히고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 어떻게 중국을 움직일 것이냐"에모든 질문이 집중되기도 했다.

   아시아 역내 리더십 복원을 주창하는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북한의 도발과 역내 불안정을 방치할 수 없는 이해가 걸려 있어 이번 기회에 북한을 움직일 유일한 나라인 중국의 관여(engagement)를 위해 상당한 에너지를 투자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북한 문제 해법을 둘러싼 미.중의 견해차가 여러 다른 현안의 양국 협력까지 흩뜨릴 정도로 치닫도록 하진 않겠지만, 중국을 향한 압박과 설득에 그 어느 때 보다도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움직임은 확연하다는게 워싱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