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진영 (인하대 정외과교수·객원논설위원)
[경인일보=]예산 파동이 여야 간의 분쟁을 넘어, 정부와 한나라당 간의 설전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내년 예산에서 종교, 복지, 서민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함께 끼여 있으면서 별로 주목받고 있지 못한 것이 있는데, 재일동포 단체인 민단에 대한 지원교부금의 삭감이다. 불교와 서민복지가 푸대접을 받는다고 하니, 재일동포도 푸대접 받고 있는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 재일동포 단체인 민단에 대한 지원금은 원안에서 73억원이었는데, 여기에서 약 22억원이 줄어든 51억원으로 통과되었다. 2012년 재외국민투표를 앞두고 있는 한나라당에서는 표가 우루루 떨어지는 소리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런데 더욱 가관인 것은 정부원안에서는 19억원이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2001년 국회외통위에서 민단에 대한 지원금을 매년 10%씩 감소시켜 2010년 지원을 종료시키고, 다른 지역 동포 사회에 대한 지원으로 사용하자고 한 것을 반영한 액수가 아닌가 한다. 현실은 2004년 80억원 지원에서 2008년 73억원으로 감소하였고, 올해는 51억원으로 감소되었기 때문이다. 민단 지원금의 삭감은 2001년 방한한 LA한인회장 등 미주한인회장들이 "150만이 거주하고 있는 미주에서는 여권, 영사 수입 등으로 모국에 막대한 지원을 하고 있는데, 모국이 다른 동포사회에는 지원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논쟁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해외의 동포들에게 지원을 전체적으로 확대하는 차원에서 문제를 풀어야지, 배정 예산을 줄이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망각하기 잘하는 한국인들은 과거 재일동포의 모국에 대한 '막대한 지원'을 잊은 것 같다. 어렵고 가난했던 1960~70년대 한국 산업화의 기본 자금은 거의 재일동포들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한국 최초의 수출 공단인 구로공단은 재일동포전용공단이었다. 물론 그들 자신의 투자를 위한 것이라고 폄하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순전히 공짜 기부만을 얘기해 보자. 해방 후 해외공관 하나 제대로 만들어 유지할 외화가 없던 대한민국에 현재 1조원 이상을 호가하는 주일대사관과 다른 10개 총영사관을 기증한 사람들이 재일동포였다. 한국이 세계로 비상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1988년 서울 올림픽의 체조, 수영, 테니스경기장과 미사리 조정경기장도 재일동포 성금으로 만든 것이다. 심지어 현재 대한체육회 본부 건물인 올림픽회관도 민단 동포들의 성금으로 만든 것인데, 서울올림픽 때 이들이 기부한 공식 성금만도 541억원(현재 시가로 2천억원 정도)에 이른다. 그뿐인가? 1997년 39억달러의 이자를 갚지 못해 국가부도 사태가 난 IMF 외환위기 때 15억달러를 송금한 사람들도 재일동포였다. 이렇게 모국이 특히 어려운 시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지원했던 것이다. 덕분에 대한민국은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 강국으로, 선진국으로 진입하였다. 그 결과 개도국에 공적자금원조(ODA)로 올해 1조3천억원을 지원하였고, 2015년에는 지원액이 그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재일동포 예산 논쟁과 함께 바라보자니 서글픈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과거에 대한 망각과 현재의 푸대접에만 있지 않다. 현 정부는 미래 '더 큰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한 중점 사업으로 코리안 네트워크의 확대를 선정하고, 재외동포정책을 수립하였다. 그런데 그러한 미래는 준비되고 있는 것인가? 오히려 현실은 더욱 작아지는 것 아닌가? 현재 재일동포 사회는 현지화로 후속세대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그 결과 민단의 장래도 어려운 처지에 놓인 것이 사실이다. 그들이 어려운 시기 모국을 도왔듯, 그들의 곤란을 해결하는 데 모국이 오히려 도와야 하는 것 아닌가? 모국에서도 그리고 일본에서도 투표권이 없이 살아온 재일동포들이 2012년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한다. 동포 수가 많기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이 있으리라고 추정된다. 그들이 표심을 통해 그들의 섭섭함을 토로해야 하는가? 어려울 때 베푼 은혜를 현재 조금 산다고 잊어버린다면 배은망덕이 아닌가? 과거의 고마움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고, 미래를 위해서도 재일동포에 대한 지원은 감소되어서도 중단되어서도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