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실 필자도 아이를 키워봤지만 아이의 언어적 능력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계속 발전한다. 그런데 이 시기 언어 능력 발전은 모국어를 체득하고 모국어화하는 데 거의 다 집중된다. 이 때 모국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모국어와 전혀 다른 언어체계를 가진 외국어를 배우게 되면, 장차 그 아이의 언어능력이 심각한 장애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유치원 과정부터 영어를 접하면 일정 정도는 영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그것도 중학교 1~2학년까지이다. 중학교 2학년 2학기쯤이 되면 그 때부터는 영어도 국어실력이 좌우한다. 그 때부터는 영어가 더 이상 영어만의 문제가 아니라 영어와 국어의 결합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2011년도 대입 수능시험이 아주 대표적인 예인데, 어법을 제대로 모르고서는 손도 댈 수 없는 문제들이 부지기수로 나왔다. 단순한 회화나 듣기 정도의 실력으로는 손도 못 댈 고차원의 영어문제가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제대로 잘 풀고, 나아가 성인으로서 영어가 삶에서 필요할 때 제대로 구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뛰어난 언어 이해력과 구사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저학년에서의 외국어 교육은 이런 언어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력과 구사력을 저해하고 방해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정부는 초등학교 2학년 이하에서의 외국어 수업을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이처럼 국민들의 모국어 습득과 나아가 언어능력 개발에 심대한 지장을 주는 외국어교육을, 공교육 과정에서 시행되도록 허락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우리 부부가 둘 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했지만 미국에서 정착하는 것을 거부하고 아무런 연줄이나 자리가 없는 한국으로 귀국한 것은 영어 과외를 하면서 살아도 아이는 한국사람으로 만들자, 그런 결심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귀국한지 만 9년이 넘어섰지만 여전히 우리 아이의 한국어 실력과 한국 문화 습득력은 기대 이하이다.
귀국할 때의 결심 때문인지 아내는 영어과외로 어느 정도 성공해서 우리 사는 지역에서는 꽤나 유명한 과외 교사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 아내가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면서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원칙이 있다. 첫째, 어줍잖은 회화 가르친다고 하지 말자. 회화는 어법과 영작, 단어, 독해, 이런 능력들이 제대로 된 다음에 하는 것이 원칙이다. 둘째, 초등 2학년 이하는 아무리 간청을 해도 영어를 가르치지 말자. 우리 돈 벌겠다고 남의 귀한 자식 망치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원칙을 철저히 지켜왔다.
모든 공부가 다 그렇지만 영어 역시 기초가 중요하다. 어법과 어휘, 독해, 그리고 작문, 이 네 가지가 된 후에야 회화가 잘 된다. 독해와 작문은 회화의 가장 기초이다. 이것이 안 되면서 회화만 배우겠다는 것은 벽돌 없이 벽돌집을 짓겠다는 헛된 망상에 다름 아니다. 초등학교와 그 이하의 시기에 영어회화에 집중 투자하는 것은 돈 들여서 잘 하면 모국어를 서투르게 만들고 못되면 언어능력 장애자로 만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