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정인 (한국컴패션 대표)
[경인일보=]오는 1월 12일은 아이티가 대지진을 맞은 지 1년째 되는 날이다. 1968년부터 시작된 1:1 어린이 양육을 통해 당시 6만3천명 이상의 어린이들을 돌보고 있던 컴패션은 즉시 현지 어린이센터에서 돌보고 있던 어린이들의 신원 파악을 시작했다. 아이티 현지 직원들과 교사들은 자신과 가족을 돌보는 대신 아이들의 행방부터 찾아 나섰다. 긴급하게 구호와 의료 지원이 진행된 후에는 곧바로 어린이들이 안전하게 양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한 현지의 장기적 노력이 시작되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말 그대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얼굴과 문화, 환경이 전혀 다른 아이티 사람들을 위해 뜨거운 사랑으로 기금을 모아 주었고(한국컴패션 약 20억원), 다른 10개 후원국과 더불어 많은 기금을 아이티 현지에 보낼 수 있었다. 지금도 콜레라나 정치적 위협 등 많은 어려움이 끊이지 않는 아이티이지만, 이 기금을 바탕으로 재건을 위한 중장기 사업계획을 세우고 멈출 수 없는 회복의 길을 힘겹게 걷고 있다.

이렇듯 국내 후원자 분들을 대신해 많은 기금을 아이티에 전달한 한국컴패션으로서는, 모아주신 따뜻한 온정의 손길에 대한 감사와 현지에서 이를 잘 쓰고 있는지,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한지를 확인하고 정직하고 투명하게 전해야 할 책임이 생겼다. 이런 현지 방문에 동참하고 싶어하는 후원자들도 많았다. 그런데 의외의 상황에 봉착했다. 아이티 현지에서 후원국 방문자들의 신변안전을 보장할 수 없고, 현지의 양육 환경 재건에 집중하고 싶다는 이유로 후원국의 방문에 난색을 표했다. 꼼꼼한 점검과 확인에 재확인을 거쳐야만 현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숨가쁜 일정으로 움직이는 한국 언론의 현지 방문도 그런 이유로 종종 무산에 그치고는 했다.

물론 충분한 보고서가 왔고 어렵게 들어간 몇 번의 현지 방문을 통해 기금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보고할 수 있는 자료는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지진이 났을 때부터 우선순위를 명확히 했다. 후원국 방문은 나중에, 현지 파악과 복구가 먼저. 아이티에게 후원국의 하나인 한국은 자신들을 돕는 나라로서가 아니라 대등하게 어린이들을 돌보는 연합체라는 인식이 분명 존재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1952년 후원을 받기 시작해 1993년까지 수혜국으로, 2003년부터 지금까지는 후원국으로 존재하는 한국컴패션과 이를 바라보는 국제컴패션의 시선을 볼 때 컴패션 안에는 분명 수혜국과 후원국의 뚜렷한 구분이 있다. 하지만 그 구분은 역할의 구분이지, 도움을 주는 나라와 받는 나라로서의 구분은 아닌 것 같다.

도움을 주는 것에는 분명 큰 자부심과 기쁨이 있다. 그건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열정적인 한국을 소개하는 것이 내게는 큰 기쁨이다. 작년에는 작정을 하고 아시아 6개국 컴패션 수혜국 대표들을 초청해 전쟁의 폐허에서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한국의 면면을 보여주었고 큰 감동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도저 같은 한국의 방식이 때로는 다른 수혜국에서는 어렵고 낯설 때가 있는가 보다.

진정한 사랑이 '주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가 아니라 '받는 사람이 필요로 하는 대로' 행하는 것이 맞다면, 한쪽의 입장만을 주장하면 안 된다. 컴패션에서는 수혜국이 먼저 필요한 것을 말한다. 후원국 입장에서는 기금 모금 형태가 상황과 잘 맞아 떨어지지 않을 때도 많고 현지의 입장을 후원자들에게 잘 전달해야 하는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주는 입장보다 받는 입장을 존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면 감수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역할을 한다. 어떤 그림에서 각자 더 큰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각각의 퍼즐이 빛을 발하고, 이를 위해 번거로움을 감내할 수 있다면, 그 그림은 더욱 아름다울 것이다. 사랑을 전하는 일은 그 이상이다. 단순히 역할을 잘 감당하는 것을 넘어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각자의 자리에서 존중하며 돕는 일, 아이티 지진 1주년을 맞아, 그 나라를 향한 안타까움이 큰 만큼 더욱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