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완 (논설위원)
[경인일보=]신묘년(辛卯年) 태양도 어김없이 대지를 비추며 새 역사를 이어 가고 있다. 여명의 빛이 구름을 뚫고 고개를 내밀면 희망가를 부르고 덕담을 나누며, 개인의 경우 작심 3일이 될지언정 한가지씩 자신과 약속을 굳건히 하고 해낼 것을 다짐한다.

지도층도 다르지 않다. 지난해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한 반성을 시작으로 국민의 복된 삶과 국가의 번성을 위해 위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신년사에서도 새해 맞이 각오들이 비상하다. 한결같이 그 안에는 국민이 있다. 매년 그 해 약속한 내용들을 추려 나열하면 국민, 특히 서민들의 삶은 풍요 그 자체다. 빈부의 격차를 생각할 필요도 없다. 서있는 위치에서의 충분한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공수표로 믿음이 가지 않는다.

정치권이 신년사중 국민에게 약속한 말들을 나열해 보자.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는 '더욱 낮은 자세로 국민을 섬기고', '민생의 한가운데에서 서민과 함께 생활정치를 해 나가겠다'는 올해 정치 포부를 밝혔다. '서민경제 살리기에 전심전력을 다해 나가도록 하겠으며, 서민과 중산층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더불어 잘 사는 대한민국'을 강조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도 말의 차이가 있을 뿐 의지만은 다르지 않다. '새해에 국민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 국민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준비하겠다'며 새틀을 말한다. '서민들이 허리를 펴고 차별과 특권이 없는 사회를 준비하는 새해', '중산층이 활개를 펴고 국민이 마음껏 창의력을 발휘하는 역동적인 사회를 준비하자'고 호소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는 '모든 국민이 공정한 기회를 통해 희망을 품고 꿈을 꿀 수 있는 사회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는 '당의 역량을 강화해 노동자·농민·서민에게 희망의 정치'를,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서민의 삶을 파괴하는 전쟁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며 평화에서 행복한 삶을 찾았다.

국민을 강조한 이면에는 기득권의 선점과 대권이 있다. 물론 당의 존재이유에는 대권을 손에 넣고 막강한 권력을 바탕으로 국민과 국가를 반석위에 올려 놓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담겨 있다. 이 마저도 없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모래알 처럼 흩어져 미아가 될 지도 모른다. 매년 국민과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의 진흙땅 다툼이 준비돼 있기 때문이다. 벌써 부터 그런 조짐이 국회에서 일고 있어 '서민과 함께하는 생활정치', '국민 속으로' 등 등 올해도 국민과의 약속은 지켜지기 힘들 것 같다.

한나라당의 예산안 강행 처리로 촉발된 대립이 신묘년 일년 내내 전국을 휘집고 다닐 기세다. 지난 12·31개각으로 입각 준비중인 감사원장과 국무위원 내정자 인사청문회,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 4월 국회의원 재보선시 여야간 한판 승부, 수면위로 나온 잠룡들의 대권 행보 격돌 등 정치권이 격동의 시간을 예고하고 있다.

비중이 큰 정치인의 말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민주당 천정배 최고위원은 당 종무식에서,…"죽어서 이 악의 무리들, 탐욕의 무리들을 소탕하는 한해를 만들자"고 독설을 퍼부었다. "이명박 정권을 확 죽여버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원색적 표현으로 '막말 논란'을 빚은 후다. 천 최고위원을 '패륜아', '인격 파탄자'라고 맹비난하며 정계 은퇴를 요구했던 한나라당과 청와대는 공격을 늦추지 않았고, 이에 민주당은 "여당 대표의 '실언파동'을 덮으려는 꼼수이자 적반하장"이라며 반격에 나서는 등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혼미정국으로 치닫고 있다.

신급돈어야(信及豚魚也)', 사람에게 믿음의 힘은 돼지나 물고기에까지 미친다는 의미로, 믿음의 위대함을 일컫는다. 부처지정 자무적종(夫妻持政 子無適從), 부부가 주도권을 다투면 자식이 믿고 따를 바가 없다고도 했다. 국민에 대한 신의도 말에 대한 신뢰도 없고, 책임정치를 해야 할 정당의 정치에는 다툼만 있는, 그래서 국민을 힘들게 하면 리더로서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리더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시대적 소명은 국민에게 귀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