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영 (경기과학기술진흥원장)
[경인일보=]기술의 융합화와 시스템화가 진행되면서 산학협력을 통한 개방형 기술혁신 전략이 확산되고 있다. 기업 내부의 연구 자산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는 폐쇄형 기술혁신 전략으로는 글로벌 경쟁시대에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시장경제체제에서 산학협력은 수요과 공급의 논리에 의해서 자연 발생적으로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많은 경우에 시장의 실패가 초래되어 과소투자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기업이나 대학이 산학협력을 하고 싶어도 믿을만한 파트너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나아가 산학협력을 통해서 개발된 기술의 가치에 대한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여 공동연구 등의 거래행위가 성사되기가 어렵다. 이런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 세계 각국에서는 정책적으로 산학협력을 지원한다. 한국에서도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원하여 산학협력을 지원하고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정책은 산학협력 연구비에 대한 보조금을 지불하는 것이다. 유망 연구과제를 선정하여 정부와 기업이 연구비를 분담하여 산학협력 연구를 추진하고, 연구결과 창출되는 지적재산권은 최소한의 기술료만 받고 기업으로 이관한다. 경기과학기술진흥원에서도 이런 방식의 산업협력 지원정책이 김문수 도지사의 주도로 3년 전에 시작되어 도내 중소기업과 대학간의 연구협력 증진에 큰 역할을 하였다.

그동안 '경기도기술개발사업'을 통해서 산학협력 연구를 지원한 경험에 의하면 산학협력을 저해하는 제도와 관행이 우리 사회와 조직 곳곳에 남아 있어서 정책의 효과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즉 우리의 산학협력 관련 제도와 관행은 1970~80년대 모방형 혁신을 추구하던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 새로운 기술혁신의 패러다임에 걸맞지 않은 것들이 많은데, 이런 구시대에 형성된 제도와 관행을 미래지향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첫째, 산학협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대학의 경영방침이 바뀌어야 한다. 대부분의 한국 대학은 교육과 학술연구를 일차적인 목표로 설정하고, 산학협력은 부수적인 목표로 간주하는 경향이 높다. 또한 산학협력을 통해서 연구비를 많이 유치한 교수보다는 우수한 학술논문을 발표한 교수를 높이 평가한다. 대학교수의 임용과 평가에서 산학협력 경험과 능력은 중요시하지 않는다. 이처럼 산학협력에 장애가 되는 많은 제도와 관행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는데, 이들을 산학협력에 친화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둘째, 산학협력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대학과 산업의 지리적 배치가 재구성되어야 한다. 산업사회에서는 공단, 대학, 주거가 지리적으로 분리된 방식으로 배치되었다. 대학과 주거지는 도시 내에 있는 반면 기업은 멀리 떨어진 공단에 위치하도록 하여 대학과 기업 간의 지리적 거리가 멀다. 그러나 산학협력이 원활히 이루어지도록 하려면 대학과 기업 간의 지리적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서울 구로지역의 디지털밸리가 급속도로 성장한 이유도 이런 입지적 장점 때문이다. 따라서 주거, 교육, 산업이 함께 어우러진 산학협력 친화적 입지 패턴을 형성할 수 있도록 국토 활용 계획과 도시계획이 바뀌어야 한다.

셋째, 산학협력에 있어서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증대시켜야 한다. 그동안 산학협력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은 중앙정부가 주도하고, 지방자치단체는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지역적 특성과 과학기술 인프라를 고려한 산학협력 정책을 수립하고 현장 밀착형 정책의 추진은 중앙정부보다는 지방자치단체가 더 잘 할 수 있다. 지역 단위의 산학협력 지원정책은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고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체제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보다 구체적으로 중앙정부가 기획한 정책에 지방이 매칭자금을 제공하는 현재의 구도를 전환하여 지방자치단체가 기획한 정책에 중앙이 보조금을 지급하는 제도로 전환해야 한다.

이글을 맺으면서, 산학협력에 친화적인 사회를 만드는 작업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노력만으로는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즉 산학협력의 주체인 대학, 공공연구기관, 기업 등의 이해와 협력이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