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재현 (경기도문화의전당 이사장)
[경인일보=]2년 전 소극장에서만 10만 관객을 동원했던 '민들레 바람되어'를 21일부터 다시 공연한다. 최근 드라마 '자이언트'에서 '미친 존재감'이란 칭호와 함께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정보석씨가 주인공 남편 역을 함께 하기로 했다. 정보석씨를 처음 만난 건 1989년께 대학로에서 내가 막 연극 배우를 시작할 무렵이었다. 나는 하이네밀러의 '청부'란 연극에 출연했고 운좋게 포스터에 기주봉, 김학철 등 대선배들과 함께 나오는 행운까지 얻었다. 그런데 그때 선배들과 함께 찍은 포스터가 문제의 발단이 됐다. 포스터상에 나는 긴 의자에 앉고 그 뒤로 키가 조금 큰 김학철씨와 키가 작은 기주봉씨가 서있는 그런 구도였다. 기주봉씨의 키와 나의 앉은키가 별 차이 없이 포스터에 비쳤다.

이 포스터를 보고 영화사에서 연락이 왔다. 이문열 원작, 곽지균 감독, 정보석 주연의 '젊은날의 초상'이란 작품에 운동권 친구 역으로 나를 보자는 것이었다. 조연급이었으나 신인인 나로서는 정말 좋은 기회였다. 꽃단장을 하고 충무로에 있는 영화사를 찾았다. 나를 기다리던 감독님과 촬영감독님, 영화사 관계자들은 일제히 청바지에 운동화 신은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아무 말 없이 서로 얼굴을 보며 작은 소리로 뭐라고 대화를 나누셨다. "키가 좀 작지않나." "좀이 아니라 역할하고는 안 맞는데, 많이 작아" "운동권 학생이 굽 높은 구두를 신을 수도 없고…" "그런데 얼굴은 좋네"(캬~ 아직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촬영감독이신 정일성 촬영감독님의 말씀이셨다). 결국 주인공 정보석씨가 180㎝가 좀 넘는 상황이라 다른 조연으로 좀 작은 듯하니 조금 큰 사람을 구했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나원참, 사람 키를 고무줄처럼 늘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키 때문에 이 좋은 기회를 놓치는구나 생각하니 갑자기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얼굴(?)은 된다면서요, 키는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뭐 이런 소리들이 머릿속에서 맴맴거리고 그 순간 참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갔다. 그리고 일주일 뒤 다시 보자는 약속만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무거운 마음과 마지막 작은 희망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며칠을 고민해봐도 키를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머리에 섬광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발목 운동화를 신고 그 안에 뭔가를 넣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이것저것 넣고 실험하다 합판을 잘라 차곡차곡 5㎝를 쌓았다. 발은 몹시 불편하고 아팠지만 틀림없이 키는 커보였다. 약속한 날 영화사로 갔고 나는 그 자리에서 감독님과 관계자들로부터 만장일치로 캐스팅당했다. 나의 연기 초년시절은 이렇게 키높이운동화의 기적과 함께 시작됐다.

'젊은날의 초상' 주연 정보석씨와 이번에 연극으로 해후하자 그 시절이 떠올랐다. 20년이란 세월동안 고난도, 남부럽지 않던 시간도 있었고 이제는 중견 연기자가 돼 다시 만났다. 나는 배우 생활을 하며 나태하거나 초심을 잃을 것 같을 땐 항상 키높이 신발을 생각했다. 올해를 시작하며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그 시절 치열함과 절실함 그리고 설렘을….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그 당시보단 생활도 나아졌고 배우로, 제작자로 어느 정도 인정받으며 문화예술 전반에 관여하고 있다. 그 시절보단 정말 스스로 나를 보는 시각도 나아진 건 확실하다.

그러나 그 시절 내 가슴과 머리에 꽉 찼던 절실함과 치열함은 지금 얼마만한 크기로 나에게 있는가 반성해본다. 굳이 어려운 시절을 그리워하며 허리띠를 다시 졸라매자는 구태의연한 말을 늘어놓으려는 게 아니다. 물질은 풍요로워졌으나 오히려 우리를 설렘으로 이끌 무언가를 놓치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한 번 되짚어 보고 싶다.이 겨울, 유난히 춥다. 추위로 움츠린 겨울을 녹일 뿐만 아니라 생명력 넘치는 봄을 맞이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저마다의 '키 높이의 기적'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혹은 마음 깊은 곳에 누구나 간직하고 있을 그 기적의 기억을 되살려 낼 수 있기를 진정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