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구 (수원대교수·객원논설위원)
[경인일보=]전셋값이 무려 93주 연속 상승 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2009년 4월 첫주 이후 1년9개월 가까이 매주 상승한 것이다. 그동안 전국의 집값은 4.9% 오른 반면에 전세금은 무려 14%나 인상되었다. 작년말 은행권의 전세자금 대출 잔액은 2009년보다 22% 늘어난 12조8천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중이고 금리 또한 작년 5% 내외에서 올들어 6%대 후반까지 올라 세입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전세 대란은 이미 오래전부터 서서히 잉태되었다. 2000년대 들어 물가 상승률을 밑도는 저금리 체제가 장기화되면서 집주인들이 점진적으로 전세를 월세로 돌린 때문이었다.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 전국적인 도시재개발사업은 설상가상이었다. 서민주택들이 한꺼번에 대량으로 사라졌으니 말이다. 차제에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건설에 매진했으나 역부족이었을 뿐만 아니라 민간임대주택사업도 활성화되지 못했다.

2008년에 불거진 글로벌 금융 위기는 또다른 복병이었다. 공교롭게도 주택경기 침체와 맞물리면서 건설사들이 주택 공급을 대폭 줄인 때문이다. 그나마 신규 물량도 중대형 중심이어서 전세 수요가 많은 85㎡미만의 중소형은 상대적으로 적게 공급했다. 시세보다 저렴한 보금자리주택을 대거 공급한 것도 전세난을 부채질했다. 셋집을 전전하면서도 '무주택요건'만 채우면 언젠가는 싼 집을 구할 수 있는 것이다. 매매 대기수요가 전세로 전환된 것은 '옥상옥'이었다. 향후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가 크지않은 상황에서 굳이 집을 구입할 이유가 없었던 탓이었다. 정부의 수수방관은 더 큰 패착이었다. 23년 전부터 전세난이 예견되었음에도 정부는 집값 잡기에만 올인했을 뿐 전세 문제는 등한시했던 것이다. 작금의 전세난은 공급 부족과 저금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나 정부의 소극대응 탓이 더 컸다.

새해들어 정부가 서둘러 전세대책을 마련했다. 9만7천 가구의 공공 소형 분양임대주택의 경우 공사기간 단축을 통해 조기에 공급하고 올해중에 공급 예정인 매입임대주택 2만 가구도 가능한 상반기에 조기 매입해서 기초생활수급자 등 저소득층에 제공할 예정이다. 국민주택기금의 전세자금 5조7천억원을 2~4.5%의 저리로 지원하며 전세자금 대출 요건을 완화했다. 임대주택에 대한 세제지원 요건 개선을 통한 민간임대사업을 보다 활성화하기 위해 주택법을 빨리 개정토록 했으며 지자체와의 협의를 통해 재개발, 재건축 시기도 최대한 분산하고 부동산중개업소들의 전셋값 담합에 대한 감시도 강화하도록 했다.

그럼에도 전세 가격은 여전히 상승기류를 타는 중이다. 중소형 전세 물건 부족에서 시작된 전세난은 서울 도심에서 외곽으로, 다시 경기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덕분에 상대적으로 빈집이 많았던 용인, 고양, 파주 교하지구의 전세 물건들이 모두 소진되었다. 심지어 전세대란은 대학촌까지 강타함으로써 신학기를 앞둔 대학생들을 크게 긴장시키고 있다. 전세대책의 약발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 것이다.

이번엔 정부가 늑장대응한데다 전세대책도 도시형 생활주택 공급에만 치우쳐 지역별, 수요자별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때문이다. 경영난에 시달리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올해중에 총 21만 가구의 보금자리주택 공급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이상의 대책들이 다소 시간을 요하는 것들이어서 당장 발등의 불을 끄기에는 역부족이다.

설이 지나면 신혼부부와 학군 수요까지 가세, 전세난은 한동안 더 심해질 전망이다. 인플레 우려에 따른 금리의 추가 인상도 간과할 수 없다. 정부의 방관과 실기(失機)가 전세난을 키운 것 같아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