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동호 (시인·고려대 문과대 교수)
[경인일보=]두 여성 거목이 우리 곁을 떠났다. 한 분은 박완서 선생이고 다른 한분은 송정희 선생이다. 작가로서 박선생은 세인의 주목 속에서 가셨고 송선생은 조용히 남모르게 세상을 떠나셨다.

연초에 학교에 나갔더니 발송자를 알 수 없는 묵직한 소포가 하나 와 있었다. 조심스럽게 포장을 풀었더니 송정희 선생의 시집 '봄은 가고 오는 것이 아니다'여서 이 분이 또 시집을 내셨구나 하는 가벼운 기분으로 펼쳐보려는데 유고시집이라는 부제가 눈에 들어왔다. 송선생은 몇 년 전부터 일면식이 없는 필자에게 시집을 우송해 주셨는데 언젠가 한번 직접 뵙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는 있었으나 이를 실천하지는 못했다. 70년대부터 한학에 진력하여 동양의 고전적 경전들을 두루 번역한 이 분의 숨은 노력의 지대함을 잘 알고 있던 터여서 송선생의 타계는 더욱 아쉬웠다. 최근 10년 동안은 주로 시창작에 전념하셨는데 이 분이 한학의 온축을 시로 승화시키고 싶어 하시는구나 하는 느낌은 막연히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유고시집의 표제가 된 '봄은, 가고 오는 것이 아니다'라는 시는 그동안의 학문적 온축을 새롭게 표현하고 있었다. 여름은 봄의 청춘식장이며 가을은 봄의 산실이고 겨울은 봄의 신방인 까닭에 봄은 가고 오는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은 상식의 틀을 깨트리는 참신한 시적 발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시집을 되풀이 읽으며 이 분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생각했을까 떠올려 보았다. 그것은 생에 대한 강렬한 긍정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비슷한 연배의 박완서 선생도 나이 40인 70년대에 등단하여 40년 동안 작가 생활을 하면서 많은 역작을 발표했다. 박선생은 여성문학이 부재하던 시절 여성의 내면적 심리를 특유의 문체로 묘파하면서 여성의 삶을 문단의 중심으로 끌어들이는데 크게 기여한 작가였다. 박완서 선생의 부음을 접한 순간 필자는 빈소로 먼저 달려가지 않고 마지막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통독했다. 지인의 말을 빌리면 마지막 순간까지 아주 명료한 의식을 지니고 돌아가셨다는 전언이 무언가 더 아쉬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박선생의 가슴 속에는 남들이 갖지 못한 아픔이 있었다. 꽃봉오리 같던 20대에 맞이한 전쟁이 가져다 준 공포 그리고 남편과 사별한 직후 젊은 아들의 돌연한 죽음 등 하느님으로부터 한 말씀만이라도 듣고 싶었던 참척의 아픔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작가란 고통에 의해 탄생한다는 말이 그대로 적중하는 것이 작가 박완서였을 것이다. 박선생이 인생에 오직 한번 밑줄을 치고 읽었던 것은 예수와 빌라도의 대화에서 '스쳐간다'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죽음 앞에서 예수가 자신의 존재가 가지는 의미를 '스쳐간다'고 말했을 때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가 지닌 근원이 무엇인지를 박선생은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이 아픔이 작가로서 박선생의 대성을 가능하게 만든 동력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박선생도 자신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리지 않았더라면 작가의 길이 아니라 학문의 길로 나갔을지도 모른다는 고백이다. 마지막 산문집의 제목을 정한 것도 아마 그러한 연유가 아닐까 싶다. 학문의 길을 간 송선생이 말년에 갱지에 시를 썼다는 것과 대조되는 발언이지만 한편으로는 두 분 모두 가보지 않을 길에 대한 소망을 깊게 간직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인생이 무엇인가 숙연한 것임을 느끼게 된다.

여성에 대한 편견이 많았던 시절 오로지 자신의 길을 걸어 대가의 경지에 도달했지만 그래도 아직 새로운 길에 대한 도전의 열망을 두 분 모두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인생은 누구나 후회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속언은 두 분의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그것은 두 분 모두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두 분의 삶에 경외감을 갖는 것은 40여년 한 분야에 최선을 다한 삶에 대한 경외감일 것이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이루었느냐는 그 다음이다. 박선생의 갑작스런 타계로 인생이 너무 허망하게 느껴진다는 분에게 짧게 메일을 보냈다.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하면 그래도 조금 위안이 되지 않겠느냐고. 그렇다. 봄은 가고 오는 것이 아니다. 입춘 우수가 다가오고 한강물이 풀리고 꽃들이 피어나 새들이 우는 봄이 오더라도 그것들은 가고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생명 속에 움트고 자라난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송선생의 시적 어투를 빌려 누군가에게 봄 편지를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