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를 시민들과 같이 하면서 집회 시위를 막으려면 그 긴장감의 강도는 분명 군인과 다르다. 이들은 항상 긴장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업무만으로도 압박에 의한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과도하다. 그래서 내무생활은 긴장감을 풀어줘 다음 업무를 준비하는데 도움을 주는 인간적인 공간이어야 한다. 물론 긴장감을 일정 부분 유지하기 위한 규율은 필요하다. 이를 구실로 한 선임병의 괴롭힘은 또다른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강박관념에 억눌려 늘 불안감을 안고 생활하는 공간이 되고 만다. 폭탄의 안전고리가 빠져 터지기만 기다리는 불안정한 상태다.
전의경 선임자의 구타와 가혹 행위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경찰청은 사건이 발생하면 으레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약속해 왔다. 최근에는 구타 가혹행위자와 관리감독을 태만히 한 지휘요원에 대해 형사 입건하고 인권교육과 전의경 인권침해신고센터를 만드는 등 그동안 나온 근절 매뉴얼 중 가장 강력한 대책을 발표했다. 결과는 판정패다. 경찰청의 조치를 비웃기라도 하듯 며칠 지나지 않아 구타와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한 후임병들이 근무지를 이탈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경찰청장이 진화에 나섰다. 관련 부대 해체라는 고강도 대책을 내놨다. 더이상 나올 대책이 없어 보인다.
기강 해이가 실제 시위현장에서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선임병이나 지휘관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쇠파이프나 죽창 등으로 무장한 폭력적인 시위대와 맞서는 상황에서 긴장하지 않으면 병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긴장감 유지는 필요하며, 엄격한 규율이 사고를 예방하는 효과적인 하나의 방안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지휘관들도 긴장감을 유지하고 정신을 번쩍 차리라는 의미에서 데모 현장에 나갔을 땐 구타를 눈감아준다고 한다. 이같은 관행이 내무생활에 까지 이어지면서 인격 모독과 가혹행위 형태로 나타나게 되며, 이는 또다른 사고의 전조가 돼 사태를 키워왔다. 데모 현장이든 내무반이든 관행이 없어져야 하는 이유며, 이러한 악습이 전통처럼 전해지면서 되풀이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부대 부적응이라는 개인적인 이유외에 우울증 환자를 양산하는 위험지역이다.
우울증은 자살의 최대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통제가 어려운 우울증의 특징은 90%가 긍정적이고 10% 정도만 부정적이어도 그 10%에 예민하게 집착해 많이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10%의 부정적인 면이 다 없어져야만 자신이 살 수 있다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우울증을 앓는 이들은 겉으론 무기력하고 우울해 보이나 "사고 체계안에선 그 부정적인 면을 향해 굉장히 활발하게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 전문가 소견이다. 전의경 사건의 경우 부대 이탈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죽음이라는 극단으로 이어지는 사건이 꽤 된다. 사회적으로도 큰 파장을 몰고 온 정신적 신체적 고통과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 백혈증 사망 등 끔찍한 일들이 부대내에서 터져 나왔다. 우울증이 원인이다.
전의경은 군인과 다르다. 사회 질서를 지키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현장에서 겪는 고충의 크기는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간접 경험으로는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부대원은 물론이요 관리·지휘 요원의 꾸준한 관리와 지속적인 교육이 병행돼야 한다. 이와 함께 반드시 살펴야 하는 것이 트라우마(trauma)다. 심리학에서 영구적인 정신장애를 남기는 충격, 즉 정신적 외상을 뜻한다. 큰 사고나 사건을 당한 사람이 외상이나 정신적 충격때문에 사고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면 불안해지는 증상이다. 업무성격상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구타와 가혹행위는 이러한 불안 증세를 더욱 키우게 된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예방만이 근본 대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