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사라는 직업은 참 어렵고 외로운 측면이 많다. 타인의 시시비비를 가려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그게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쉽지는 않다. 특히 재산범죄의 경우, 수사결과에 따라 엄청난 재산적 이해득실이 걸려있어 양 당사자가 첨예하게 대립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직무수행도 어려워진다. 그와 같은 경우 나름대로 소신이 없으면 직무수행이 어려워진다.
언젠가 다산 선생님의 저서 '목민심서'를 읽다가 '청송지본 재어성의(聽訟之本 在於誠意)'라는 문장을 접하게 되었다. '송사를 다룸에 있어서 근본은 성의를 다함에 있다'라고 번역되어 있었다. 순간 나는 이 문장이 검사를 비롯한 판관들이 지녀야 할 덕목을 정확히 제시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이건 기업의 임직원이건 공무원이건 일상생활이나 직무수행시 가장 중요한 덕목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誠意'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송사를 다룸에 있어 '성의'를 다하는 자세는 무엇인가? 첫째, 경청하는 자세다. 상대방이 하고 싶은 말을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벌써 사건의 절반은 해결된 셈이다. 아라비아 속담에 "듣고 있으면 내가 이득을 얻고, 말하고 있으면 남이 이득을 얻는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양당사자의 말을 경청하는 과정에서 그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뿐만 아니라 태도, 표정의 변화까지 감지함으로써 진실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는 것이다. 둘째, 배당된 사건을 나의 일처럼 처리하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처삼촌 묘 벌초하듯이 한다'라는 표현이 있다. 오늘날 남녀평등의 사회에서는 어울리지 않지만, 어떻든 우리 조상들은 무성의한 태도를 가리켜 그런 식으로 표현했다. 과정에 정성이 들어있지 않으니 결과가 좋을 리 없을 것이다. 셋째, 당사자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갖는 것이다. 당사자들의 진술청취와 증거수집 과정을 거쳐 수사가 종결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따뜻한 마음을 갖고 사건 당사자들과 차 한 잔 나누며 수사과정과 그 결론에 대해 잠시 설명하는 자리를 마련해 본다. 모든 사건에 대해 그렇게 하기는 어렵지만 중요사건이나 특히 검사실에서 직접 구속한 사건의 경우, 처리하기 전에 그런 기회를 갖는다면 당사자들도 수사결과에 좀 더 승복하게 될 것이다. 수사는 냉철한 머리로 하되 처분은 따뜻한 마음으로 하는 자세-이것이 다산 선생님이 제시하신 수사관의 진정한 자세가 아니겠는가 생각해본다.
나는 기관장으로 부임하는 곳마다 그 지역의 명필에게 위 문장을 부탁하여 검찰청 현관 입간판에 써 넣었다. 직원들에게 경각심을 줌과 동시에 민원인들에게 우리의 근무태도를 알려주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런 문구가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다산 선생님의 말씀에 따른 자세로 처리한 사건의 결과에 대해서는 나 자신이 그 결론에 떳떳했고, 많은 사건 당사자들도 그 처리결과에 승복했으리라는 믿음이다. 재야에 있는 지금 외형상 업무의 역할에는 변화가 생겼으나 주어진 사법시스템 안에서 정의를 구현한다는 이념 자체는 법조 3륜에게 공통된 과제일 것이다. 법조 3륜의 한 축인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나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은 여전히 매 사건마다 이러한 '성의'를 다하는 자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