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긴 김 지사가 차기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적은 없다. 경기지사 직무만으로도 여념이 없을지 모른다. 한 신문과 인터뷰에서도 "신문 볼 시간조차 없다"고 토로할 정도이니, 지금 대선을 생각할 겨를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경기지사는 대선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 정치사가 말해 주는 숙명 비슷한 것이다. 1997년 당시 이인제 지사에 이어, 2007년 손학규 지사도 대선에 출마했거나 후보 경선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대통령에 당선되진 못했지만, 모두들 유력한 주자들이었다. 이인제 전 지사는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총재와 격돌했고, 손학규 지사 역시 당적을 바꿔가며 대선가도를 향한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이인제, 손학규 모두 위협적인 경선 흥행 메이커였다.
경기지사가 갖는 정치적 힘이자, 한계이다. 경기도는 여러 도시와 그 구성원의 다양함, 지역의 광활함, 그리고 인구수와 유권자의 성향에서 서울에 견줄 만하다. 전국을 압축해 놓은 축소판이다. 지사로 당선된 순간부터 차기 대선주자 반열에 오른다. 어찌 보면 큰 정치에 뜻을 두었기에 경기지사에 도전한 것으로 보는 게 옳을지 모른다. 지방 행정가로만 머물기에는 성이 차지 않는 자리이다. 충남이 고향인 이인제 지사가 그랬듯이 경북 영천이 고향인 김 지사도 예외는 아니다.
여기에 김 지사에게는 소박한 풍모에서 비롯되는 '사람 냄새'가 강점이다. 젊은 날 노동운동을 하면서 몸에 밴 어려운 사람들의 이웃 같은 인상을 준다. 순수하고 성실해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국내 유명 석학 중 한 분이 식사 자리에서 "개인적으로 김문수 지사가 참 좋다"고 말한 것을 우연히 들은 적이 있다. '왜 좋으신가'를 물으려다 자리의 성격상 어색해 그만 두었지만, '일을 잘할 것 같은 이미지'를 일반에 심어준 듯하다.
또 승부사적 기질도 갖췄다. 그는 1996년 부천 소사에서 당시 민주당 대변인으로 스타 정치인이었던 박지원 후보를 누르고 정치에 입문했다. 후에, 박지원 의원이 김 지사의 선거운동을 얘기하면서 혀를 내두른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만큼 승부욕이 강하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는 절대 지지층을 갖고 있는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를 눌렀다. 야권의 내로라하는 스타들을 차례로 꺾은, 쌓기 힘든 전적을 갖춘 것이다. 이런 김 지사를 여권의 대선가도가 가만히 놓아둘 리 만무하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대항마로서는 '안성맞춤'이다. 경기도는 정치적 무늬는 그럴 듯하나 서울과 지방의 중간지대이다. 강한 응집력이 없다. 서울의 화려함에 가리고, 지방의 끈끈함에 찢기어 빈 지갑이 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강점인 사람 냄새는 언제든 그가 지닌 정체성의 발목을 잡는 낙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정치는 늘 '신화'를 찾는다. '신화는 없다'는 MB 정부 자체가 샐러리맨의 성공기, 청계천 복원과 같은 신화의 결과물이다. 국민 가슴에 전해지는 감동과 울림이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신화이다. 오늘 박근혜 전 대표가 갖는 정치력 역시 천막 당사와 선거 무패 행진, 그리고 원칙의 산물이다.
김 지사는 정치인으로서 이채로운 이력의 소유자다. 학생운동, 노동운동, 진보정치, 보수정치로 이어지는 전환이 그러하다. 대권은 기업으로 치면 독과점 기업이다. 주식회사가 아니다. 이제 원하건, 원하지 않건 김 지사는 신화 창출의 입구에 서 있다. 복지·개헌·정치개혁·중산층과 서민·남북문제와 같이 울림의 전선은 널브러져 있다. 시대가 요구하는 신화를 만들어내느냐는 전적으로 김 지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