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
[경인일보=]마트료시카는 둥근 모양의 목각 인형이다. 이 인형을 열면 그속에 작은 인형들이 겹겹이 들어 있는데 보통은 네 개에서 아홉 개, 많게는 수십 개에 이르는 인형이 인형의 몸통 속에 차곡차곡 들어차 있다.

러시아어로 마트료시카는 어머니를 뜻하는 '마티'에서 유래했다하니 러시아인들은 이 인형을 통해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민속신앙을 상기한다.

1891년 예술가 세르게이 말루틴이 디자인하여 발표한 뒤 일약 러시아의 상징이 되다시피 한 이 인형의 기원에 대해서는 일본 목각인형 '다루마'(達磨)나 '시치푸쿠친'(七福神)이라고 보는 견해가 주류다.

백년 남짓한 세월동안 이 전통인형은 러시아의 어느 거리나 상점에서도 만날 수 있는 대표적 문화상품이 되었다. 제작 방법에 따라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저가 상품과 장인이나 예술가가 고객의 주문을 받아 직접 제작하는 고가의 애호가용으로 나뉜다. 그 종류도 다양해, 러시아 전통적 머리수건을 쓴 홍안의 농촌 여인을 기본으로, 기독교 성인들, 러시아 혁명 영웅 등이 대종을 이루었으나 점차 시대상을 반영해 비틀즈나 세계적 스포츠 스타, 미국 대통령, 심지어는 오사마 빈 라덴의 모습을 묘사한 것도 있다.

미국의 한 수집가는 6천종의 마트료시카를 소장하고 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종류가 제작되었는지를 가늠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생산이 최고조에 달했던 1980년 한해에 1천만 세트가 제작 판매되었다고 하니 요즘 말로 '대박' 문화상품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목각 인형이 러시아인과 외국인의 관심을 받는 문화상품이 된 비결은 무엇일까? 그 하나는 외래문화를 러시아적 전통문화와 지혜롭게 융합시켰다는 점일 것이다. 인형의 형상은 외국에서 빌려왔으되 거기에 러시아 신화를 윤색함으로써 고유한 문화로 만든 것이다.

이것은 모든 문화의 생성원리다. 외래 문화에 토착문화를 적절히 가미할 때 새로운 문화가 창조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다양성이다. 마트료시카 인형은 둥근 목각의 재질만 유사할 뿐 그 형상은 천태만상(千態萬象)이다. 인형을 모으면 시사만화가 되고, 역사 인물전이 되고, 대중적 스타의 전시장이 될 정도다.

더 중요한 특징은 마트료시카 인형에 '부착된' 풍부한 이야기라고 봐야 할 것이다. 러시아인들이 일본 원산의 인형을 풍요와 다산의 수호신처럼 여기게 된 것은 인형과 연관되는 다양한 신화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인형이 우랄지방의 고대 신화에 나오는 여신 '주말라'의 형상이라고 믿는가 하면, 어떤 이는 모스크바 근교의 옛 왕국에 살았다는 '황금여인' 전설과 연관짓는 사람도 있다. 이들 여신의 몸속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 있거나 삼라만상을 담고 있다는 특징이 공통적이다.

이런 특징은 미국의 마텔사가 제작해 성공한 여자인형 바비와 대비된다. 바비도 1959년에 출시된 이래 미국과 세계로 날개돋친 듯 팔려 나간 문화상품으로, 점차 기능과 외모 면에서 다양한 형태로 진화했다. 바비의 성공 비결은 소녀들의 자의식과 환상적 몸매에 대한 욕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바비인형에는 신화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없다.

마트료시카의 성공담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이야기'의 힘이다. 이야기는 사물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야기로 인해 한갓 나무 조각에 불과한 인형이 생명을 지닌 존재나 신비한 능력을 지닌 존재처럼 변신한다.

최근 모든 도시들이 문화도시 혹은 창조도시를 표방하며 도시의 매력을 높이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도시의 매력은 쾌적한 도시공간과 더불어 도시와 도시의 장소에 깃들인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고대 신화일 수도, 최근의 역사적 사건일 수도, 그 곳에 산 인물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작가를 비롯한 예술인의 또 다른 사명은 우리가 사는 삶터에 서려 있는 이야기를 발견하는 일이다.

이야기가 깃든 공간이 정겨운 장소, 매력적인 도시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