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EU와의 FTA 비준에 대해 우리나라 통상당국은 낙관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무엇보다 한-미 FTA에 대해서는 극단적인 반대가 많았으나 한-EU FTA에 대한 정치권의 반발은 별로 없었다. 심지어 2006년 한-미 FTA 협상이 추진될 당시 반FTA 단체들은 미국보다는 EU와의 FTA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물론 미국과의 FTA를 반대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대안인 것으로 판단되었으나, 반대론자 자신들이 제안했던 FTA이므로 반대할 명분이 마땅치않을 것이다.
한-미 FTA 내용중 최대 민감이슈는 투자자정부제소권(ISD)이었다. FTA 회원국의 일방적인 조치로 투자자가 손실을 볼 경우 해당 정부를 국제기구에 제소함에 따라 정부의 정책권한을 제약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미국과의 FTA를 반대했다. 하지만, EU와의 FTA에서는 이러한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기에 반FTA론자들이 EU와의 FTA를 반대할 명분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지난주 유럽의회가 한-EU FTA를 비준함에 따라 우리나라 야당 및 반FTA 단체들은 비준을 반대하거나 지연시킬 그럴듯한 명분을 찾게 되었고, 그나마 찾은 명분이 한-EU FTA 내용을 잘 모르기에 이번 회기에 비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해 하반기에 한-EU FTA 협정문과 내용이 공개되었으므로 억지로 꿰맞춘 논리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동일한 시점에 관련 정보가 일반공개되었는데, 우리나라 야당만 모르고 있었다고 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지난 서너달 동안 유럽의회는 법안을 검토해서 상임위와 본회의 절차를 모두 마쳤는데, 이제와서 내용을 파악하는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우리 국회의 나태와 무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밖에 없다.
임시회기가 열린 지금 국회 외교통상위원회는 한-EU FTA 국회비준안을 상정하고 검토해야 한다. 정말로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라면 EU와의 FTA이행으로 무역피해가 수반되는 산업에 대한 보완대책을 정밀하게 수립해야 할 것이다.
한편, 보완대책이 부당하게 집행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으므로 FTA 보완대책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한-칠레 FTA 이행시 1조2천억원을 농업피해 보상 및 구조조정 지원 비용으로 확정했고, 매년 2천억원 내외의 예산을 집행해 오고 있다. 농업피해가 한 건도 보고되지 않았다고 하는데도, 1조2천억원을 지원함으로써 농업계의 기대심리를 키워놓았고, 그 결과 한-EU FTA에 대한 농업계의 기대심리도 상당할 것으로 보여 걱정이 적지 않다. 피해대책은 확실하게 수립해야 하지만, 피해여부에 관계없이 '퍼주기'식 지원은 지양되어야 한다.
제조업에 대한 보완대책도 현실적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2006년 무역조정지원제도가 입법된 이후 2차례 개정되었다. 현행 기준은 6개월간 매출 혹은 생산액 감소 25%인데, 매출이 25% 감소되면 그 기업은 사실상 부도상태로 될 가능성이 높다. 부도기업에 무역조정지원을 해줘도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부도전 미리 지원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25% 기준을 20%나 10%로 낮출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 아직도 25% 기준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지원 기준을 하향조정함으로써 중소기업들의 무역피해를 즉시에 지원해 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FTA가 우리 경제에 상당한 경제이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예상되므로 조기이행이 절실하다. 지금까지 이행된 FTA와는 달리 EU와의 FTA는 우리 산업에 상당한 구조조정 압력을 초래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우리나라 야당은 무리한 반대를 하기보다는 제대로 된 FTA 보완대책을 확립하는 계기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