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구 (화가·중앙대 미술학부 교수)
[경인일보=]최근 인천시립미술관의 건립 장소와 위치가 대략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건립 장소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와 달리 정작 어떤 미술관을 만들 것인가의 성격에 관한 논의는 소외되어 있는 것 같다. 미술관 건립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점은 접근성에 따른 위치와 장소도 중요하지만, 어떤 미술관을 만들 것인가 하는 성격 규정이 우선돼야 한다. 오늘날 미술관의 기능과 역할이 새롭게 정립되어 운영되고 있는 세계적인 추세에 비추어 더욱 그렇다. 지금 방식대로라면 이미 다른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시·도립미술관의 형태를 그대로 따르게 될 공산이 크다.

현재 국내의 여러 시·도립미술관의 특징을 보면 대부분 비슷한 규모와 골격의 건축적 형태와 지역작가 및 일부 동시대 현대미술 작품을 소장하여 상설전시와 기획전을 주로 여는 곳으로 고답적인 화이트 박스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비해 오늘 날 새로 건립되는 세계 미술관의 추세는 일방적인 작품 전시회로 관객에게 감상 만을 유도하는 폐쇄성을 벗어나 관객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개방성을 존중하는 것이 특징이다. 권위적인 대상으로서 미술관이 아니라 시민의 삶 속에 녹아있는 열린 공간으로서의 미술관인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2004년 개관한 일본의 가나자와 '21세기 현대미술관'을 들 수 있다. SANAA가 설계한 이 미술관은 단순함과 절제의 미학을 통해 투명성과 개방성을 강조한 건축도 높이 평가받지만, 무엇보다도 정원처럼 편안하게 관객과 주민들을 미술관으로 끌어들여 즐기도록 하는 소통과 체험의 공간이란 점에서 각광받고 있다. 그런 탓에 매년 증가하는 많은 수의 관람객 방문으로 인구 45만의 작은 도시 가나자와의 지역경제도 한층 활성화되고 있다.

국내 광역지자체 중 후발주자로 건립에 나선 인천시립미술관은 앞서 시·도립미술관 모델을 편의적으로 따르기보다 이 '21세기 현대미술관'의 성공 요인을 특별히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또 하나. 인천시는 지리적으로 서울과 경기도와 접한 수도권에 위치해 있어서 다른 지자체와 달리 지역적 폐쇄성에 갇힐 이유가 적다. 그러므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그리고 서울시내에 건립중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등과 함께 인천시립미술관을 하나의 지역적 영역으로 보고 기존의 미술관들과 차별화한 새로운 미술관을 건립했으면 한다. 말하자면 인천시의 행정단위나 지리적 지역성에 연연하지 말고 수도권의 다른 미술관들이 갖지 못한 그래서 수도권의 여느 미술관이 인천에도 있는 것이 아니라 '인천에만' 있는 미술관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궁극적으로 지역성을 확대하고 전국화는 물론 나아가 세계화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며, 문화산업과 창조도시를 위한 전략으로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한편 이를 위해서 현재의 미술관건립추진위원회의 구성도 새롭게 보완할 필요가 있다. 지역의 여러 예술 관련 주체 뿐만 아니라 실력있는 국내외 전문가들을 모셔 새롭게 구성하고 추진했으면 한다. 이와 같이 새로운 로드 맵이 만들어진다면 완공 시기의 연장도 고려해 볼 만하다. 이미 뒤늦게 출발한 만큼 바쁘다고 조급해 할 이유도 없으며 질적 완성도에 충실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쏟을 필요가 있다. 다만 다가올 2014 아시안게임 등 시급하게 지역의 문화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면 우선적으로 임대형 또는 기존의 여유공간을 활용하는 시립미술관 개관도 고려해 볼 일이다. 임시로 개관한 미술관에 전문인력을 두어 시립미술관건설본부를 설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런던의 테이트 모던,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파리의 퐁피두센터, 그리고 일본의 가나자와 21세기미술관 등 오늘 날 명품 미술관으로 각광받는 곳들은 모두 오랜 기간에 걸쳐 시민과 전문가와 지자체가 머리를 맞대고 주도면밀한 전략과 발상의 전환을 통하여 건립되었음을 지금 단계에서 꼼꼼히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