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도 수돗물 값을 올리자는 말이 아니다. 근대화의 풍광인 수세식 변기가 얼마나 물을 많이 쓰고 또한 얼마나 많이 환경을 오염시키는가를 깨닫자는 말이다. 남한강 상류 산골 강변에 사시는 큰 이모(부)가 잘 아신다. 더 상류에 위치한 제천에 새마을 운동으로 수세식이 소개되면서 떠먹어도 되던 강물이 얼마나 혼탁해졌는지. 물론 충주댐이 완공된 후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어졌단다. 팔순이 가까운 이모부는 열렬한 박정희 숭배자로서 자랑스럽게 산업화 세대를 살아내신 분이다. 그러나 당시와 오늘을 비교해 어느 삶이 좋은 것인가 판단이 어렵다고 고백하시며 참으로 물 맑은 하얀 백사장에서 천렵하던 날들이 너무도 그립다고 하신다.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수도권 주변 시골 비슷한 곳으로 이사 오면서 나는 화장실에 관한한 그 어느 호사스런 최고급 변기도 부럽지 않은 자연 화장실을 갖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그것도 집안에. 집안에서도 부엌 바로 곁의 따스하고 밝은 곳에. 더욱이나 물도 한 방울 쓰지 않고 냄새도 없이 말이다. 물론 아무리 추워도 얼어 터질 걱정 없다. 말이 나온 김에 자랑 하나 더하자. 이 화장실은 내 밥상의 윤기 나는 채소까지 책임져 준다. 그래서 이름하여 퇴비화 변기다. 내 얘기에 그게 정말이냐고 적잖은 사람들이 일부러 보러오기까지 하였다. 궁금하신 분들은 '녹색평론사'에서 번역 출간한 '땅 살리기 똥 살리기'라는 책의 일독을 권한다. 나는 그대로 따라서 한 것뿐이다. 그도 아니면 조셉 젠킨스(Joseph Jenkins)를 인터넷에서 찾아보시든지 아니면 www.humanurehandbook.com을 방문해보시라.
만드는 법과 작동원리는 너무도 간단하다. 흔해 빠진 20ℓ 들이 플라스틱 들통을 육면체 나무 상자에 넣고 들통의 직경에 맞게 나무상자 상단을 오려내고 그 위에 수세식 변기 덮개를 장착한 후 일을 보시라. 그리고 마른 풀이나 짚, 혹은 낙엽 부순 것, 톱밥 등으로 덮어 주시라. 냄새 완벽 제거다. 꽉 차면 마당 한 켠의 퇴비 칸에 비우고 다시 마른 풀 등으로 꼭 꼭 덮어 주시라. 물론 통은 물로 닦아 주시라. 그리고 그냥 기다리시라. 일 년 지나면 냄새도 향기로운 초콜릿 색깔의 짙은 갈색 퇴비가 나온다. 우리 부부는 이것을 갈색 황금이라 부른다. 이걸 텃밭에 덮어 주시라. 모종을 꽂아놓기만 해도 저절로 자란다. 당신의 똥이 당신의 밥이 되는 것이다. 물로 똥을 씻어 내리고 그 물을 다시 정화시킨다고 별 오만가지 과학적 지식을 들이대고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들여가며 생난리를 피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춥디 추운 어느 날, 아침 신문에서 혹한으로 수도가 얼어 화장실 때문에 고생한 경험 기사를 하도 실감나게 읽어 옛 생각에 더하여 최근 내 경험을 소개해 보았다. 물론 조금은 불편하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주는 즐거움은 불편함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우리는 근대화의 편리함에 너무 익숙하여 이처럼 간단하고 값싸고 환경 친화적인 삶의 지혜들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자문할 일이다. 곧 우리가 누리는 (혹은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리함의 대가를 요구하는 지불 청구서가 배달될 것이다. 수세식 화장실은 새 발의 피다. 조만간 보시라. '4대강 죽이기'의 대가가 얼마인가를. 개봉박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