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5 인천상륙작전으로 고향을 잃은 월미도 원주민들이 인천시와 정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사진은 지난 9월14일 인천시 중구 북성동 월미공원 정문 앞 작은 판잣집에서 원주민 양권식(76)씨가 '미군 폭격으로 희생된 월미도 주민들의 피해를 보상하고, 살던 집과 터를 반환해 달라'며 농성을 벌이고 있는 모습. /김범준기자 bjk@kyeongin.com

[경인일보=이현준기자]"과거사위원회에서 진실만 규명되면 문제가 모두 풀릴줄 알았는데…."

한인덕(67) 월미도 귀향대책위원장은 28일 경인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이처럼 말했다. 3년 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 규명이 있었을 때 '58년의 한이 풀렸다'며 기뻐했던 그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 힘빠진 과거사위원회의 진실 규명 = 과거사위원회는 2008년 3월 "'월미도 미군 폭격사건'은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위해 작전상 전략적 위치에 있던 월미도를 미군 전폭기를 이용, 폭격하고 기총 소사함으로써 발생한 사건이며 이로 인해 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히고,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와 협의해 희생자와 쫓겨난 피해자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미군이 저지른 민간인 희생사건'이란 주장이 처음으로 정부기관 조사를 통해 공식 확인됐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미군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위해 월미도에 있는 북한군을 기만해야 할 군사적 필요가 컸다고 하더라도, 폭격 지점의 선정이나 폭격 과정에서 민간인에 대한 희생을 줄이려는 최소한의 조치도 없이 월미도 전체를 무차별 폭격했다는게 과거사위원회의 결론이었다.

특히 과거사위원회는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고도에서 주민들에게 기총 소사까지 한 것은 명백히 국제인도법 등 국제법에 위반된 작전으로 못박기도 했다.

그리고 정부에 대한 합당한 피해 보상과 귀향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뚜렷한 조치없이 결국 손해배상소송으로 이어지게 됐다.

한 위원장은 "정부는 인천시에 책임을 미루고, 시는 다시 정부에 책임을 미루는 상황이 반복되는 등 진실 규명 이전이나 이후나 바뀐게 없었다"고 토로했다.


■ 월미도대책위, "조속한 해결 바람뿐" = 한 위원장은 "고향을 뺐긴 월미도 원주민들의 60여년의 한이 하루빨리 풀렸으면 하는 바람뿐"이라고 말했다.

과거사위원회의 권고 효력 기한인 3년이 다 돼가는 시점에서 한 위원장을 비롯한 월미도대책위 소속 45명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결국 소송을 택했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과에 대해선 빛을 비추면서도 그 이면에 아직도 남아있는 그늘에 대해선 거들떠 보려고도 하지않는 정부가 야속하기만 하다. 그는 "귀향 대책을 마련해 달라며 1천일이 넘는 농성을 벌였고, 과거사위원회의 진실 규명 결정도 있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며 "여기까지 오게 했던 정부가 야속하다"고 말했다.

한편 인천시는 월미도대책위의 이번 소송과 관련, 인천변호사회 등에서 공익소송 수행지원 방안을 협의하고, 국회의원 등을 대상으로 '특별법' 제정 추진을 건의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