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왕휘 (아주대 교수)
[경인일보=]올해 들어 물가가 더욱 빠르게 오르고 있다. 몇 십 년 만에 찾아온 이상 한파로 농작물 작황이 좋지 않은 데다 구제역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많은 가축들이 살처분되면서 식료품 가격이 증가하였다. 설상가상으로 튀니지에서 촉발된 민주화 시위가 중동 지역 전반의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들면서 석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도 폭등하였다. 이 결과 1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4.1% 상승하여 한국은행의 물가 관리 목표 기준치인 3%를 훌쩍 넘어섰다.

우리나라와 같이 물가 문제로 고민하는 중국과 브라질을 비롯한 주요 신흥시장국가들은 뛰어오르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정책과 환율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전자는 금리 인상으로 통화량을 줄여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정책이며, 후자는 평가절상을 통해 수입가격 인하를 유도하여 물가를 관리하는 정책이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후자보다 전자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인민은행은 지난해 12월 한 달에만 지급준비율과 기준금리를 차례로 인상하였으며, 한국은행도 지난 해 6월 이후 세 차례 기준금리를 인상한 바 있다. 반면, 양국 모두 국제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자국 통화의 평가절상을 최소화해 왔다.

표면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중국은 여러모로 차이가 있다. 한국은행은 중국인민은행에 비해 매우 소극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현재 2.75%로 세계금융위기 이전 평균인 5%에 비해 아직도 낮다. 적극적 금리인상을 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2010년 말 기준 795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대출 금리가 1%포인트 오를 경우 이자 부담액이 연간 8조8천억 원 증대될 것으로 추정된다. 가계부실의 상당 부분이 부동산담보대출이기 때문에, 금리인상이 궁극적으로 부동산시장을 침체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 지난 1월 13일 발표된 서민물가 안정대책에 금리정책은 빠져 있었다.

소극적 금리 인상으로 물가 상승이 제어되지 않을 경우, 환율정책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인민은행 부총재 이강(易綱)은 지난 달 26일 베이징대 강연에서 물가인상 압력을 줄이기 위한 위안화 평가절상을 시사하였다.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상은 '차이나플레이션'(Chinaflation, 중국발 인플레이션)을 통해 우리나라의 물가상승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 중국은 2010년 상반기 기준 총수입의 약 17%를 차지하는 최대 수입국이다. 따라서 중국의 물가상승은 우리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정치권에서도 환율 조정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지난 2월 28일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야당의원들은 현 환율정책이 수입물가 상승 부담을 서민들에게 그대로 전가시킨다고 비판하면서 원화의 평가절상을 요구하였다. 5% 성장이라는 목표를 위해 수출을 포기할 수 없는 정부는 아직까지 이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

사실 원화는 주요 경쟁국 통화에 비해 덜 절상됐기 때문에, 환율조정의 여지는 남아 있다. 또 G20 서울 정상회담에서 의장국으로서 국제정책공조를 주도했던 우리나라가 자발적으로 약속을 이행한다는 우호적 평가를 받을 것이다. 대한 무역적자 때문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소극적인 미국 의회를 설득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중국보다 먼저 하지 않는다면, 이런 긍정적 효과들은 반감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