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가지 갈등을 떠올려 볼 때 이 철수작전은 눈여겨보아야 할 점이 있다. 최근 한국에서의 갈등은 종전의 사회적 갈등과 양상을 달리 한다. 산업화 민주화 시대를 거치면서 노사갈등이나 계층갈등이 전면에 돌출되던 시대와 달리 지역 갈등이나 정치와 종교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것 같다. 세종시 문제로 지역갈등이 국가적 쟁점으로 비화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겨우 이 문제가 봉합되고 나자 정치와 종교의 갈등이 첨예하게 제기되고 있다. 아직도 불씨가 남아 있는 사대강 사업은 정치적 쟁점이 종교적 갈등으로 비화된 것 중의 하나이고 이슬람 수쿠크법은 경제적 쟁점이 종교적 갈등으로 번져나간 예가 될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무상급식에서 촉발된 복지논쟁과 동남권 신공항과 과학비즈니스 벨트 선정 문제 등은 지역연고권과 더불어 경제적 문제와 정치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엉켜 있는 것 같다.
새 봄이 돌아오니 이런 여러 문제들이 터져나와 한시도 편안한 날이 없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희망찬 앞날을 설계해야 할 봄날 어떻게 하면 여러 난관들을 성공적으로 타개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적으로 풍족해지면서 한국인들의 욕구는 더 크게 증진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 강하게 분출되는 것 같다. 최근의 한 통계에 의하면 한국사회에서 분출되는 갈등비용이 대략 삼백조원에 달하며 이는 거의 국가 전체의 예산과 맞먹는다고 한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은 갈등의 대국이라 지칭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사회적 갈등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다양한 갈등 요소들이 충돌하면서 사회발전의 에너지가 분출된 것도 사실이다. 사회적 갈등을 한국인이 지닌 열정의 표현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과열된 갈등으로 인해 사회가 여러 갈래 분열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사회적 갈등의 중재자였던 종교가 사회적 갈등의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이는 종교의 세속화와 관련이 있겠지만 그 이전에 지켜져 왔던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원칙의 붕괴가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제정일치의 시대가 고대원시사회에 있었지만 현대와 발달된 사회에서 제정일치는 여러 가지 불가피한 요인으로 인해 그 유효성이 부정된 제도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종교가 한국사회의 정치적 갈등을 치유하고 보완하는 기능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종교가 사회적 갈등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은 한국을 끌어나가는 지배집단이 그만큼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는 소통의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이는 한국의 사회발전이 소통보다는 속도를 더 강화시킨 결과이기도 하며 그동안 성취한 민주화가 내적인 성숙을 이루지 못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발전의 속도보다는 소통의 확대가 지금 이 시점에서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소통의 부재가 만들어내는 갈등의 증폭은 만물이 약동하는 봄과 더불어 더욱 강화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의 리비아 철수작전은 중요한 참조 사항이 된다고 여겨진다. 자신의 안전도 중요하지만 함께 일한 동료들의 안전도 동시에 중요하다는 판단은 위기 상황에서 발휘된 한국인의 진정한 마음의 표현이다.
한국의 저력은 아무리 증폭된 갈등이라도 지혜롭게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휘된다. 지금의 증폭된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국인 본래의 마음을 되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그 교훈적 사례를 한국인의 리비아 철수작전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함께 하는 나눔의 정신이야말로 한국인이 지닌 정신적 저력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들이 이를 잠시 잊고 눈앞의 작은 이익이나 명분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