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완 (논설위원)
[경인일보=]"장애인특수학교 및 장애인복지시설 건립을 환영한다." 광교신도시 입주예정자들의 입장이다. 주민반대가 심해 주택가 등 도심에는 설립이 어려웠던 시설중 하나가 장애인복지시설이었다. 대표적인 이유가 '집값 떨어진다'다. 사회공동체에서 인간이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상으로 환영한다는 말 자체가 모순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 뒷마당에는 안된다'는 님비가 우리 사회에 뚜렷한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잡으면서, 장애인시설을 밀어내는 등의 부작용이 당연시되고 있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 여하튼 장애인관련 시설을 배척하는 인심이 대세인 상황에서의 입주환영은 한단계 선진화된 용기있는 행동임에 틀림없다.

장애인복지에 대한 역사는 깊다. 기록으로는 근대 이전인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와는 차이가 나 비교거리가 될 수 없지만, 복지는 어느 시대건 행복지수를 높이는 한 부분을 차지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에는 장애인을 독립된 명칭없이 병자와 동일하게 처우했다고 한다. 이들의 구휼제도는 임시적·사후대책적으로 시행한 것으로 돼 있다. 고려시대는 삼국시대와는 달리 맹인들을 위한 직업대책이 있었다. 고려 초부터 국가에서 복업(卜業)을 과거제도에 포함시켜 복인을 선발했으며, 그 중 매복맹인(賣卜盲人)에 관한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유교사상의 영향으로 구휼사업이 제도적으로 이뤄진다. 복업이 명과학(命課學)으로 개칭돼 잡학교육을 받았고, 관현맹인(管絃盲人)이 음악관련 직업을 가졌다. 정조 7년에는 벙어리와 고자는 자력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고 맹인은 복술(卜術)을, 절름발이는 그물 짜는 일 등을 통해 자립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종 31년(1894) 미국인 선교사 홀(Hall)여사가 맹인학생을 집에서 양육한 것이 한국 최초의 장애인에 대한 보호와 교육으로 보고 있다.

그후 발전을 거듭, 장애인관련 복지법령이 만들어지고 개정되면서 장애인의 복지에 관한 사항을 종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법률이 제정됐다. 장애인복지법이 그것으로,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과 권리의 보장, 장애발생의 예방과 장애인의 의료·교육·직업재활·생활환경개선, 장애인의 자립·보호 및 수당의 지급 등 복지증진 및 사회활동 참여증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한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을 통한 사회통합을 기본이념으로 삼았다. 이러한 내용의 법제정은, 이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아야 함에도 구분지어 차별을 받아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차별은 진행형이다. 한쪽에서는 장애인시설 입주를 반기는 반면 비슷한 시기에 다른 지역에서는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다. 그렇다고 반대 주민들을 나쁘다고 몰아세울 수도 없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사회전반적인 인식이 개선되지 않았고, 주민들의 재산목록 1호인 집의 값이 장애인시설 입주로 하향 평준화된다는 데서, 심정적으로는 안타까우면서도 좋아할 주민은 없을 듯하다. 이중성격이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일상 깊숙이 뿌리내려 있는 것이다. 이를 극복, 사회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인식의 전환을 위한 교육 등 장기적인 대책과 뜻있는 사회구성원들이 움직임을 구체화해야 한다.

그래서 광교입주예정자 대다수가 선뜻 받아들이기로 한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싶다. 고무적인 것은 이들의 생각과 행동이 적극적이라는 데 있다. 입주자 총연합회가 최근 카페에 특수학교설립관련 언론보도 내용을 게시하면서 달린 댓글에서 감지된다. '우리 모두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 장애인특수학교 설립을 환영한다', '환영합니다. 장애우들도 잘 가꾸어진 좋은 환경에서 학교생활을 하면 정신적으로 훨씬 더 안정되어 질 것 같다', '명품 광교에 명품 장애인특수학교가 설립돼 모두 함께 살아가는 광교가 되길…', '(댓글이) 환영 일색이군요. 마음이 뿌듯합니다. 저 역시 환영합니다' 등의 글들이 게시됐다. 최근 올린 41명의 회원중 1명만이 반대입장을 밝힌 것으로 집계됐다. 사회이슈화해 선진의식의 출발점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