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초등학교 아이들조차도 '영어발음 한글로 받아쓰기'를 하지 않는다. 유치원 아이들의 깜찍한 영어발음에 깜짝 놀라는 때도 한두 번이 아니다. 경기도가 처음 시작한 영어마을은 상대적으로 영어교육으로부터 소외되었던 저소득층 학생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 교육기회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의미있는 시도였다. 영어마을은 영어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체험형 영어 학습법을 개발했다. 경기도의 실험 이후 각 지자체가 앞다투어 영어마을을 건립했다. 각 학교가 원어민 강사를 채용하고 영어체험(전용)교실을 대폭 확대한 시발점도 영어마을이다.
고민은 지금부터다. 2000년대 중반에 비해 경기도의 가용재원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돈 쓸 곳은 많고 쓸 돈은 줄어들었으니 당연히 공공재원의 분배방향을 재고해야 한다. 도에서 매년 수십억원을 지원하는 영어마을에도 공공성을 유지하면서도 수익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있다. 문제는, 공공성과 수익성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라는 점이다.
영어마을은 건설비로만 1천억원이 투자된 거대한 사업이다. 없앨 것이 아니라면 변화를 모색하고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영어체험교육은 이미 공교육에서 상당 부분을 소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영어마을은 공교육과 중복되지 않는 콘텐츠, 여건이 되지 않는 학생들을 위한 차별화된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하는 데서 존재의미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영어마을이 올해부터 새로이 시작하는 사업들에 대해 기대를 거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미국 공립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을 들여다 도내 초등학교와 중학교 방과후 수업에 도입한다는 계획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획기적이다. 단기 체험위주의 교육에서 장기과정의 도입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는 물론, 체험보다는 실질적 영어능력 향상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이야기에도 공감을 표한다. 이와 같은 방향 전환에 대해 쓴소리도 들린다. 경기영어마을이 당초 설립취지인 공공성 확보보다는 수익성 사업에 매달리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적자누적 기관'이라는 지적으로부터 사명을 다 했으니 청산 대상이라는 논의, 저소득층 영어교육을 위해서는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았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영어마을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영어마을의 존재와 역할에 기대를 접지 않는다. 영어마을에 공공성을 유지한 채 수익성을 높이라는 주문을 하는 것은 모순이지만, 주어진 조건 아래서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 공공기관 나아가 모든 조직의 숙명이다. 아직도 영어 때문에, 자녀들에게 영어교육을 시킬 수 없어서 힘들고 어려워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영어마을은 그들에게 미래로 가는 문을 열어주는 훌륭한 통로다. 소외계층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영어마을의 존재이유는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