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목동훈·임승재기자]인천 백령도 앞바다에서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한 지 26일로 1년이 된다. 천안함 침몰로 46명의 용사가 숨졌다. 또 수색작업을 벌이던 한주호 준위가 숨지고, 저인망어선 '98금양호'가 외국 국적 화물선에 부딪혀 가라앉아 선원 9명이 목숨을 잃었다. 민군합동조사단은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했다고 공식 발표했지만 풀리지 않은 의혹이 적지 않다.
천안함 침몰사건 이후 북한의 연평도 포격은 국민에게 충격을 줬다.
■ 되돌아 본 1년=지난해 3월26일, 104명의 승조원을 태운 천안함이 큰 폭발음을 내며 백령도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58명은 극적으로 구조됐으나 나머지 46명은 실종됐다.
군은 백령도 장촌해안에 '구조작전 현장 지휘소'를 꾸리고 수색작업에 나섰지만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3월30일 수중 탐색작업을 벌이던 해군특수전 UDT 요원 한주호 준위가 숨지는 비극이 발생했다. 4월2일에는 실종자 수색작업에 동참했던 금양호가 캄보디아 국적 화물선과 충돌, 선원 2명이 숨지고 7명이 실종됐다.
천안함 용사 가족들과 국민들은 "살아 있을 것이다"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4월3일 함미 부분에 있는 식당 절단면에서 남기훈 상사의 시신이 발견됐다. 같은 달 7일 함미 절단면 기관조종실 부분에서 김태석 상사가 숨진 채 발견됐다.
천안함 용사 가족들은 잠수요원들의 희생이 우려된다며 어려운 결단을 내렸고, 군의 작전은 실종자 수색에서 선체 인양으로 전환됐다.
4월13일 함미 일부가 물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침몰된 지 17일 만이다. 이틀 뒤 함미가 인양됐고, 그 곳에는 실종자 46명 가운데 36명이 잠들어 있었다. 국민들의 간절한 기도에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인천 등 전국 곳곳에 분향소가 설치됐고, 고인을 추모하는 행렬은 계속됐다.
4월24일 오전 함수가 인양됐다. 이달 29일에는 백령도 연화리 해안에서 천안함 46용사 영결식이 열렸다.
천안함 침몰 1주기를 맞은 요즘 46용사의 미니홈피는 고인들을 그리워하는 네티즌의 글로 달궈지고 있다.
■ 천안함 침몰의 진실은=천안함 침몰 원인에 대해 온갖 루머와 추측이 난무했었다.
북한 개입설이 대표적이다. 북한군이 어뢰로 천안함을 격침시켰다는 주장이다. 사건 초기 정부는 북한 개입설에 신중한 입장이었다. 북한 잠수함이나 잠수정이 우리 영해를 침범해 어뢰를 쏘고 달아났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뢰 보다는 기뢰에 무게가 실렸다. 기뢰설에는 한국군이 과거에 설치한 것이라는 설도 나왔다.
암초 좌초설도 있었다. 해도에 나와있지 않은 암초에 충돌해 천안함이 좌초됐다는 것이다. 인양된 천안함 함미에는 무언가에 의해 긁힌 흔적이 있다.
또 버블제트(어뢰의 수중폭발에 의한 물대포 현상) 때 흔히 발견되는 죽은 물고기 시체 등이 나타나지 않았던 점도 암초 좌초설을 뒷받침했다. 이 외에도 피로 파괴설, 내부 폭발설 등 다양한 가설들이 제기됐다.
합조단은 천안함이 북한 잠수함의 중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한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좌현 3m 위치에서 고성능폭약 250㎏ 규모의 중어뢰 폭발로 침몰했다는 것이다. 결정적 증거는 합조단이 침몰해역에서 수거한 북한제 어뢰 추진체였다.
특히 추진부의 '1번'이라는 한글표기는 북한의 어뢰 표기방법과 일치한다. 합조단은 북한의 어뢰 설계도를 확보해 수거된 어뢰 추진체와 대조한 결과 크기와 형태가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함수와 함미에서 검출된 흰색의 분말도 증거가 됐다. 흰색 분말은 고온에서 생성되는 알루미늄 산화물로 중어뢰에 의한 폭발 주장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천안함 침몰 원인은 여전히 논란 거리다. 합조단 조사결과 발표 이후 기자협회, PD협회, 전국언론노조 등 3개 언론단체가 어뢰추진체에서 화약성분이 검출되지 않은 것과 합조단 발표 당시 북한 어뢰설계도가 잘못 제시된 점 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일부 학계와 시민단체 인사들은 천안함 사건 1주년을 맞아 합조단 조사결과를 검증해야 한다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 긴장과 한숨 '연속'=지난해 11월, 천안함이 침몰한 지 약 8개월이 지나 '북한군 연평도 포격 사태'가 발생한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은 남북 관계의 긴장감을 더했다. 백령도와 연평도 등 서해5도 주민들은 불안 속에서 떨어야 했다. 특히 백령도는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 이후 관광객이 크게 줄어 생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99년 6월 제1연평해전, 2002년 6월 제2연평해전, 2009년 11월 대청해전, 2010년 연평도 포격 사태. 앞으로도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둘러싼 남북 긴장감은 지속될 전망이다.
※ 서해 5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만선꿈 키우던 작은 어촌마을… 남북대치 최전방 암울한 현실
[경인일보=김도현기자]지난해 3월 발생한 천안함 사건은 백령과 연평 등 서해 5도의 이미지를 송두리째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관광과 어족자원의 보고에서 한순간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도는 남북간 군사적 대치의 최전방이라는 암울한 현실을 다시 일깨운 것이다.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서해 5도는 각종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천혜의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한 관광산업의 침체는 물론 남북간 군사적 대치의 틈을 노린 중국어선들의 불법조업이 더욱 기승을 부리면서 어민들은 생계에 막대한 타격을 입고 있다.
천안함 사건 8개월만인 지난해 11월 23일 발생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계기로 서해 5도지원특별법이 제정, 시행됐지만 그 내용은 '무늬만 지원특별법'이라는 불만의 소리가 크다. 여론을 의식한 여야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특별법 제정을 서두르고, 정부도 서해 5도 주민들의 민심을 어루만지기 위해 대폭적인 지원을 해 줄 것처럼 생색을 냈지만, 천안함 1년을 계기로 점검해 본 정치권과 정부의 각종 약속은 '검토중, 추진중'이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직후 옹진군은 서해 5도 주민들의 생활안정을 위해 행정안전부와 국토해양부 등 6개 부처에 모두 18건의 사업에 대해 국비 지원을 건의했다. 이 가운데 정부 지원이 이뤄져 공사나 사업이 진행중인 것은 절반이 채 안되는 8건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옹진군은 파악하고 있다.
무엇보다 핵심사업이라 할 수 있는 대피시설 현대화 지원마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백령과 연평, 대청도 등 3개 섬에 모두 42개의 대피시설을 현대화하는 이 사업을 위해 옹진군은 정부에 1천127억원을 요구했지만, 444억원만 올해 예산에 반영돼 현재 실시설계가 진행중이다.
수차례에 걸쳐 대형 여객선 건조 및 운영비 지원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서해 5도는 기상악화 등의 영향으로 연평균 65일 가량 여객선이 결항돼 주민 불편은 물론 관광객의 접근을 어렵게 하고 있다. 서해 5도를 운항하는 여객선사 마저 영세한 관계로 대형 여객선을 투입하는게 현실적으로 어려워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
침체를 거듭하고 있는 서해 5도 관광활성화를 위해 현재 인천시민에게까지만 적용하고 있는 서해5도 여객선 운임 50% 지원을 전국으로 확대하는게 시급하다.
연평도와 대청도 주민의 절반 가량이 어업에 종사할 정도로 어업은 관광산업과 함께 서해 5도 주민들의 주 생계수단이지만, 정부 지원은 미약하기만 하다.
특히 서해 5도 북방한계선(NLL) 부근에 수백척씩 무리지어 머물면서 우리 해역을 불법 침범해 저인망 싹쓸이 조업을 일삼거나 우리 어민들의 어구를 파손하는 중국어선으로 인한 피해예방 및 대책도 절실하다.
옹진군은 이에 따라 서해 5도지원특별법에 ▲NLL주변에 불법조업 방지용(쌍끌이) 인공어초 설치 ▲중국어선에 의해 손실된 어구 및 조업피해 보상 근거 마련 ▲정부차원에서 중국어선 불법 조업 방지대책 적극 추진 등의 대책을 포함시켜 줄 것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불법어업 단속 등에 투입하기 위해 노후화된 어업지도선을 대체 건조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정부의 예산지원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옹진군 관계자는 "서해 5도지원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실제 서해 5도에 필요한 현안을 포함시켜 줄 것을 요구했지만 대부분 누락됐다"면서 "오는 7월 말 완료를 목표로 수행중인 '서해5도 종합발전계획 연구용역'에도 이런 내용을 포함시켜 줄 것을 요청했지만 실제 어느 정도 반영될지, 또 지원이 현실화될지는 두고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