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교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유교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도 1919년 5월 4일 일어난 신문화운동 시기에 유학은 나라를 망친 원흉으로 지탄받았다. 세계 문화를 주도해 온 강대국 중국이 19세기 말 20세기 초 제국주의의 침략 아래 속절없이 무너지자, 중국 지식인들은 그 원인이 유교 사상과 이를 바탕으로 한 사회체제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20세기 들어 한국인들의 유교에 대한 인식도 부정적이었다.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유교가 나라를 망쳤다는 생각을 하고 유교를 멀리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유교에 대해 평가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는다. 한국사학계에서는 1980년대 이후 조선시대 유교의 역사적 기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세계 학계에서도 유교에 대한 평가가 바뀌기 시작하였다. 20세기 후반 한국을 비롯한 일본, 싱가포르, 타이완 등이 놀랄 만한 경제 성장을 이룩하자, 이들 국가가 유교문화권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음을 주목하고 유교 문화를 새롭게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아시아 자본주의 경제성장의 힘을 유교에서 찾으려 하였다. 학계의 평가는 이처럼 달라지고 있으나 일반인들의 유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변하지 않고 있다.
왜 그런가? 한국 유교가 조선시대 농업사회를 기반으로 발전된 봉건적인 이데올로기라서 현대 자본주의와 맞지 않아서인가? 오늘날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는 세계적인 종교 대부분이 지금부터 1천500년에서 2천년 이전 시기, 유목사회 또는 농업사회를 기반으로 성립되었으나 지금 세계 종교로 인류사회에 뿌리 내리고 있다. 그런데 왜 비슷한 시기에 성립된 유교만 현대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가. 필자는 유교 경전에 대한 해석이 현대사회와 맞지 않는 것이 그 이유라 생각한다. 시공을 초월하여 지속되고 있는 세계적인 종교는 모두 인류사회의 보편적인 진리를 설파하고 있다. 그러나 경전을 찬찬하게 읽어보면 오늘날 우리가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 생각보다 많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세계적인 종교는 보편적 가치 중심으로 재해석되고 정리되어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으나, 유교는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면 유교가 지금부터 할 일은 무엇인가? 현대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 중심으로 유교는 재해석되고 이해되어 일반인들에게 내놓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정민 교수는 '다산선생 지식 경영법'에서 정약용의 글을 분석하고 정리해서, 공부하는 학생에게는 단계별 학습이라는 효율적인 공부 방법을, 경영인들에게는 창의적으로 경영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정민 교수는 단순히 공부하는 방법이나 경영 기술을 뛰어넘어 지식경영이라는 21세기 정보화시대에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KBS가 엮은 '유교 아시아의 힘'에는 유교가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21세기 아시아 나아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는 유교 문화유산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 우리 사회의 소중한 정신적 자산, 문화적 자산, 교육 자산으로 활용하여야 한다. 그래서 서원과 향교에서 학생들이 공부하는 방법을 배우고, 기업인들은 경영을 배우며, 정보전문가들은 정보를 조직하는 법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며칠 전 경기도 향교와 서원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에 참석하였다. 그 자리에서 주민과 학생들에게 다가가려는 향교와 서원 운영자들의 노력하는 모습에서 한국 유학의 밝은 미래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