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학 연구원 상임연구위원)
[경인일보=]한국은 다문화 사회일까? 이주노동자나 국제결혼의 증가로 외국인 이주자가 12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는 최근의 통계를 보면 우리 사회가 다인종,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다는 평가는 사실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나 결혼이민자의 수의 증가만으로 우리 사회를 다문화사회라 부르기는 어렵다. 여전히 제도나 의식 수준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주자들의 상당수는 차별을 감수하거나 단속 대상인 불법 체류자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주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에 정착해 일하게 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정부의 정책은 이주노동자의 정주화를 막거나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단속과 추방에 집중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결혼 이주자를 포함한 가족을 '다문화 가족'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다문화 가족이란 명칭은 두 가지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우선 개념의 혼란이다. 다문화 가족은 국제결혼이나 혼혈인이라는 말이 연상시키는 인종주의를 회피하려는 배려로 만들어진 용어다. 그런데 이 용어로 인해 다문화주의가 내포하고 있는 가치가 궁색해졌을 뿐 아니라 차별성을 감소시키려는 애초의 의도와 무관한 또 다른 차별어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각종 '다문화 가족' 정책의 대부분이 저 출산 위기 해결이나 복지의 문제에 국한된 것이어서 낡은 통합주의적 문제의식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 사회의 다문화 가족 정책은 외국인과 외국문화를 존중하고 상호 공존을 지향하는 다문화정책이 아니라 '한국인 만들기'를 목표로 하는 '단일문화' 정책에 가깝다.

이주노동자들이나 결혼 이민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한국인 특유의 혈통 중심주의나 단일민족 신화에 근거한 폐쇄적 국민관 때문이다.

현재 250여개의 우리나라 성씨 중 절반이 넘는 130여 성씨가 중국을 비롯한 일본, 여진, 위구르 등지에서 온 귀화 성씨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단일 민족 이야기는 신화임이 분명하다. 이민족의 귀화는 멀리 고조선 시대로부터 조선 시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으며 국제적 개방국가였던 고려시대에는 무려 60여 성씨가 귀화했다고 한다. 세계화시대에는 한국인들이 세계 각국으로 진출해 세계인들과 함께 살아가듯이 이주자들도 사회의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개방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

유네스코가 2005년 말 '문화다양성협약'을 채택했던 사실을 상기해보자. 이 협약은 154개국 가운데 148개국의 압도적 찬성을 얻어 통과되었는데, 문화적 관점에서 국제관계를 바라보는 최초의 국제 협약이다.

이 협약의 정신은 2001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한 '문화다양성 선언'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문화 다양성은 교류와 혁신, 창의성의 원천으로 인류에게 필요한 공동의 유산"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보다 앞서 캐나다 정부는 다문화주의를 아예 국시(國是)로 정한 바 있다. 캐나다 정부는 각국으로부터 유입되는 다양한 문화들을 단일한 문화로 통합하기 보다는 각 민족 고유의 문화를 인정하고 이를 계승 발전시켜 캐나다 문화를 창조하는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문화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캐나다 정부의 다문화주의 정책은 다방면으로 추진되고 있는데, 소수 종족으로 남아 있는 인디언과 이누이트들을 위한 학교의 설립과 여러 민족 고유의 문화를 유지 발전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지원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이주자들이 살기 좋은 사회로 만들어 나가는 것은 당면한 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국가의 미래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다문화사회를 위한 준비 가운데 가장 중요한 다문화의 가치와 핵심을 재확인하는 일일 터이다. 이주자들이 자신들의 고유문화를 간직한 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기여하는데 요긴한 교육, 문화 프로그램을 지원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정책의 전제는 스스로 낡은 단일민족 신화에서 벗어나는 일이며, 국력과 해당국가의 국민을 동일시하는 오류에서 벗어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