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동호 (시인·고려대 문과대 교수)
[경인일보=]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에서 일어난 대지진은 역사적 사건이다. 대지진과 더불어 휘몰아 닥친 쓰나미는 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가를 보여주었다. 방파제는 물론 농경지와 도시와 산야를 뒤덮은 검은 흙탕물의 노도는 인간이 건설한 건축물들을 단숨에 휩쓸어 버렸다. 진짜 재앙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대지진의 여파로 정지된 원자력발전소는 급기야 최악의 방사능 물질을 내뿜는 악마적 발전소로 전락하였다.

이 놀라운 재앙을 생중계하듯 텔레비전에서 목격한 한국인들은 놀라움과 슬픔을 참지 못하고 성금을 걷는 한편 위로의 시를 쓰고 전문가를 파견하는 등 다방면에서 그들과 고통을 함께하고자 했다. 이 상황에서 필자가 제일 먼저 떠올려 보았던 것은 일제의 감옥에서 순절한 윤동주 시인이었다.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일본인들에게 과연 윤동주는 이 처참한 순간을 목격하고 무어라 말할 것인가. 윤동주를 대신해서 말해 본다면 그것은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말일 것이다. 그의 대표적인 시 '서시'에서 윤동주는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쓴 바 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는 구절이 살아있는 것도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이 마음은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표현하고 실현하려는 의지로 인해 어떤 이데올로기보다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2011년 3월 30일 일본 문부성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중학교 교과서 검정을 발표했다. 발표를 늦출 수 없을 만큼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일이었다고 한다. 뒤이어 4월 1일 일본 각의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2011년 외교청서를 발표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일본 외무상은 독도가 자신들의 땅이므로 독도가 미사일의 공격을 받으면 당연히 자신들이 대응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엄청난 자연의 재앙과 그들이 건설한 원자력 발전소가 방사능을 대거 유출하는 위기 상황에서 슬픔을 삼키고 의연하게 대처하던 일본인들의 참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그동안 그들의 고통과 슬픔에 동참하고 그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했던 한국인들의 온정은 값싼 동정심의 발로로 치부하고 예정된 수순에 따라 영토권 주장을 강변하는 그들의 논리를 접할 때 우리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차분한 슬픔 밑에 잠복해 있던 독기서린 일본인들의 심적 근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나라가 지진의 위험에 노출되면 노출될수록 그들의 주장은 더 크고 강하게 되풀이 될 것이다. 그들은 '일본열도침몰'에 대한 대안으로서 대륙 진출을 위해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1923년에 발생한 관동대진재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이 대진재가 조선인 폭동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고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무차별적으로 조선인들을 학살하여 그들의 피해의식을 보상하면서 민심을 회유한 바 있다. 이번 독도 영유권 주장도 그들 국민들의 동요하는 민심을 달래고 조용한 슬픔의 배면에 잠복된 국민적 분노를 표출하는 출구로 사용하려는 정치적 목적도 숨겨져 있을 것이라 짐작해 볼 수 있다. 16세기 후반 발발한 임진왜란 당시에도 그들은 대륙 진출을 위해 교두보로서 조선을 이용하고자 한다는 것을 전쟁 명분으로 내세웠다. 일본 정부 당국이 부당한 주장을 되풀이 할수록 스스로 세계사에서 고립적 존재가 되는 것은 필연의 사실이라고 볼때 우리의 상황 판단도 더욱 성숙하고 냉정하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이다. 고집스럽게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교과서를 검정하고 외교청서를 발표했다는 것은 일본 정책 당국자들이 2차 세계대전의 전쟁 주범으로서 가져야 할 역사적 죄업을 망각했음은 물론 앞으로 자라날 미래의 세대들에게도 역사적 책무에서 벗어나 새로운 불행의 씨앗을 배양시키려는 불순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상징적 지표일 것이다. 관동대진재 당시 한국인의 아픔을 상기시키는 동북대지진은 우리들에게 결코 망각해서는 안되는 역사적 교훈을 되살려 준다. 명심해야 할 것은 '독도미사일대응'을 주장한 일본의 외상이 한국 침략의 원흉이며 초대조선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외 5세손이라는 것은 대륙 진출을 향한 그들의 야욕이 중단되지 않는 역사관임을 웅변하는 객관적 사실 이상의 심각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