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한 금수강산이라는 아름다운 자연을 갖고 있다. 개나리, 진달래 등으로 온 마을을 수놓는 봄, 푸른 들과 우거진 수풀의 여름, 누런 벌판과 울긋불긋한 단풍의 가을,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정결한 겨울 등은 그 속에 살던 사람들의 갖가지 사연과 어우러져 '고향'이라는 단어와 함께 우리를 미소 짓게 한다. 그 정겨운 지명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온천을 떠올리게 하는 온정이나 온수리, 강의 합류점은 두물머리나 양수, 물맛이 좋은 감천, 궁이 있던 궁말 등 지명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지은 선조들의 지혜도 귀하다. 필자의 고향인 하남시에도 아름다운 지명이 많이 남아있다. 가무나리, 달내, 갈미, 배다리, 정림, 샘말, 참샘골, 엄미리 등 언제 들어도 정겨운 이름들이다.
필자의 고향은 서울과 근접하고 있어 비교적 자주 고향을 방문해 왔다. 직업상 지방근무가 필수인지라 새로운 부임지로 떠나기 전 선산에 문안을 드리며 선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곤 하였는데, 그때마다 반가운 고향풍경이나 고향 분들을 만나는 것이 큰 기쁨이었다. 필자뿐만 아니라 이러저러한 이유로 고향을 떠난 많은 사람들은 외롭고 서글픈 타향생활에서 고향을 생각하며 많은 위안을 받는 것이 우리 정서의 저변에 깔려있다. 반드시 성공하여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들에게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생각은 어려운 시절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었고, 결국 그런 잠재력이 빠른 경제성장과 성숙한 문화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데 요즈음 고향을 찾게 되면 보금자리 주택문제와 관련하여 온갖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나부끼는 서글픈 모습을 보게 된다. 본래 보금자리 정책은 임야나 농지 등 미개발 상태의 토지를 저렴하게 수용하여 서민들에게 낮은 가격으로 주택을 공급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그런데 이미 상당부분 개발이 완료되었거나 진행중인 지역을 대상으로 할 경우 잡음이 생길 여지가 많다. 이미 오른 가격으로 수용하자니 보금자리 정책의 취지를 살리기 어렵고, 저렴한 가격으로 수용하자니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게다가 수백 년 살아온 토지를 강제로 수용당하면서 양도소득세까지 부담해야 하는 주민들의 불만은 극심할 수밖에 없다.
물론 국가가 발전하려면 주택단지나 도로, 산업단지 조성, 특정 시설물 설치를 위한 토지의 확보는 필수적이다. 이때 지나친 지역이기주의가 발전의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고향을 지키며 그 토지와 일체화된 지역주민들의 의사를 정확히 파악하여 이를 정책추진에 반영하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사항이다. '지역주민들의 보금자리를 빼앗아 누구의 보금자리를 만든다는 것이냐'라는 구호 속에는 온갖 갈등이 얽혀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해당사자간의 충분한 대화와 설득이 필요한 시점이다.
여기에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정책결정자들의 '국토 발전'에 대한 역사의식이다. 자칫 발전과 경제라는 이름으로 행하여지는 정책들이 100년 후 후손들에게 어떻게 평가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 세대가 어떤 '고향'을 물려받았고, 후손들에게 어떤 '고향'을 물려줄 것인가에 대한 냉정한 분석이 아쉽다. 과거와 미래의 멋진 조화로움, 대한민국이라는 정체성이 듬뿍 묻어있는 개발정책을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유난히 춥고 길었던 겨울도 다 지나가고 고향의 산천에는 벌써 개나리가 피어나고 곧 진달래 철쭉도 만개하리라. 국가정책과 지역주민들의 이해관계도 봄 동산을 수놓은 자연의 섭리처럼 조화롭게 해결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