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뭐라 해도 분당을은 4·27 재·보선의 종합판이다. 강재섭·손학규 두 후보 다 선출직으로는 두드러진 관록의 보유자다. 쉽지 않은 정치적 고비를 넘어온 사람들이다. 문민정부 시절인 15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김종필(JP) 최고위원은 김영삼(YS) 대통령의 측근들에 의해 민자당에서 내몰리자 자민련을 창당했다. JP 동정론이 무서운 기세로 퍼지면서 '반(反)YS 정서'가 폭풍우처럼 대구를 휩쓸었다. 신한국당 후보들은 줄줄이 낙선, 13명 가운데 단 두 후보만이 여의도에 입성했다. 그 중 한 후보가 강재섭 의원이었다. 그의 정치적 저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손학규 후보는 1993년 4월 경기 광명을(乙) 보선으로 정치에 입문한 '보선 스타'이다. 4·19 세대인 민주당 최정택 후보를 누르고 금배지를 거머쥔 그는, 2000년 16대 총선 때에는 조세형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을 꺾어 스타로서 면모를 과시했다. 그 파란의 여세를 몰아 경기도지사에 도전해 당선됐고, 지난 대선에서는 한나라당을 떠나 여당인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후보의 뜻은 이루지 못했지만, 지금은 제1야당의 대표가 된 승부사다.
두 승부사의 대진이 확정되면서 분당을은 이번 재·보선판을 키운 최고 동인이기도 하다. 당사자들에게는 피를 말리는 진검승부이다. 그러나 관전자들은 재미있다. 흥미진진하니 손님이 꼬이게 마련이고, 벌써부터 숱한 감상법이 장외를 풍미하고 있다. '누가 살아 돌아올 것인가'는 향후 정치지형에도 작지 않은 파장을 예고한다.
여론조사 결과 역시, 강·손 두 후보간 박빙의 승부를 점친다. 투표율이 당락을 좌우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돈다. 주부들 사이에 우스개 소리로 '천당 밑에 분당'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최근 집값하락으로 쑥 들어갔다지만 부와 이념, 세대의 측면에서 보수의 색채가 강해 안정 희구층이 주류를 이룬 탓이다. 한나라당으로서는 공천이 관건인 지역구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표심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변화이다. 만약 손학규 후보가 당선되거나, 강재섭 후보가 힘겨운 승리를 거두게 된다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수도권 표심의 지각변동을 미리 엿볼 수 있는 단초가 되기에 충분하다. 한나라당은 총선 패배라는 위기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그 파장은 지도체제 개편문제로 치달을 공산이 크다. 수도권 소장파 의원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질 터이고, 이는 공천권과 맞물려 거대한 쓰나미(지진 해일)로 정치권을 뒤흔들 것이다. 정국은 백가쟁명의 논의 속에 급속히 총선체제로 재편될 게 분명하다. 강·손 두 후보 가운데 승자는 중심의 한 축에 서게 된다. 내년 총선의 방향타가 될 분당을의 승자를 배제한 채, 체제정비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는 까닭이다.
전략공천 잡음으로 속앓이를 한 강재섭 후보로서는 어떤 형태로든 그 연결고리를 끊으려 들 것이다.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그로서는, 기존 당권파와 충돌이 불가피하다. 손학규 후보는 단연 돋보이는 야권의 대선후보 반열에 성큼 오르게 된다. 탈당의 원죄도 희석되어 거의 사라질 것이다. 당의 요구로 서울 종로와 분당을 출마를 마다하지 않은 그에게 더 이상 '정체성 시비'를 걸고 나올 사람은 없다.
이래 저래 분당을은 대전(大戰)이다. 개인의 정치적 명운은 물론 향후 정치구도와 맞물려 있다. 건곤일척(乾坤一擲)의 비장한 승부, 그러나 정치권만 속이 타고 국민은 이미 그 해답을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