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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성훈 (인천본사 사회문체부장)
[경인일보=]십수년 전으로 기억한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의 전신인 수도권매립지운영관리조합과 수도권매립지 인근 주민간의 갈등이 극에 달할 때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수도권매립지 인근을 지날 때면 바람에 실려오는 악취로 인해 코를 막아야 했고, 비만 오면 질척거리는 도로 등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환경에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결국 지역 주민들은 주민협의체를 구성, 쓰레기 차량이 지나는 길목을 차단하고 쓰레기 반입을 중지시키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쓰레기 반입과 관련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주민협의체가 다소 '이색적인' 폭탄선언을 했다. 수분이 많이 함유된 쓰레기는 받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즉각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엔 비상이 걸렸다.

반입중단 개시일에 앞서 기자는 수도권매립지운영관리조합에 들러 마침 회의차 조합에 모인 몇몇 주민들을 만나보았다. 그 중 주민협의체에서 비중있는 직책을 맡고 있는 한 주민에게 '반입금지 대상이 되는 쓰레기의 수분 함량 기준은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런데 수분을 계량화하는 모종의 측정장비라도 동원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기자에게 뜻밖의 대답이 들려왔다. '손으로 만져봐서 물기가 많고 적음을 판단하겠다'는 대답이었다. 냄새로 치면 관능법에 의존해 악취의 강도를 측정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쓰레기 반입 중단은 고도로 다변화된 현대사회를 유지하는 데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심각한 사안이다. 그 심각한 사안이 예고된 현장에서 정작 '원시성'을 접하다 보니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취재를 마치고 조합을 빠져나오면서 그 주민의 대답은 수도권 매립지가 안고 있는 부조리의 편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당시 수도권매립지의 관리 및 운영은 주먹구구식이었다. 주민과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정부의 대책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보다는 일단 주민들의 반발을 무마시키자는 식의 임시방편에 가까웠다. 열악한 환경 및 교통 여건으로 인해 이곳에 파견된 공무원들의 사기 또한 바닥을 맴돌았던 터라 이들에게서 창의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 운영의 묘미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고 나서 최근 수도권매립지를 찾았다. 우선 달라진 수도권매립지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외형적으로는 수도권매립지운영관리조합이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로 전환된 후 환경타운으로의 변화를 추구한 그간의 노력이 엿보였다. 국화축제, 록 페스티벌, 미술대회, 야외음악회 등 수도권매립지에서 벌어지는 각종 이벤트는 단순히 수도권지역의 '쓰레기를 매립하는 곳'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또다시 우려가 앞선다. 매립기간 연장 논란 속에서 수도권매립지 제3매립장 조성을 놓고 또한번 갈등 양상이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환경부가 올 하반기에 제3매립장 기반시설 공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매립면허허가권을 갖고 있는 인천시에 승인을 요구한 데 대해 인천시가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환경부와 서울시가 갖고 있는 매립지 부지소유권의 회수까지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자치단체가 대립각을 세우는 만큼 이번 갈등은 옛날의 조합과 주민간 갈등보다 복잡한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

'실패나 사고의 경험을 숨길 것이 아니라 교훈으로 삼아 이를 폭넓게 공유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구축하자'는 게 '실패학'의 태동 배경이다.

그간 실패와 시행착오의 경험을 그 어느 곳보다 축적한 곳이 바로 수도권매립지일 것이다. 함부로 예단할 수는 없지만 실패학에 입각해 해결방안을 모색한다면 이번 갈등은 예전과는 다른 긍정적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본다. 그 기대가 실현된다면 이 갈등은 혐오시설 성공학의 모범사례가 될 수도 있다. 전제 조건이 있다면 수도권매립지가 지역경제에 도움을 주는 환경타운으로 거듭난다고 해도 결국은 인천 시민들의 배려와 희생을 담보로 한 결과물이라는 점, 그리고 쓰레기 처리는 범국가적 문제라는 점을 정부와 인천시가 공유하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