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
[경인일보=]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가 안정을 찾아가는듯 했으나, 엊그제 미국계 신용평가회사 스탠다드푸어사(S&P)가 미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Negative)'으로 강등함에 따라 '세계의 돈'으로 통하는 미 달러화의 위상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경제를 리드하게 된 미국은 금의 가치를 바탕으로 세계 기축통화 역할을 하던 영국 파운드를 제치고, 자국이 발행한 달러가 국제적인 거래의 수단으로 인정받도록 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전후 가장 안정적이고 성장성이 예측된 미국 경제의 역량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번 S&P의 경고는 미국 경제가 2등국으로 밀려나 달러 발행국의 지위가 손상될 수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S&P의 발표로 미국을 비롯한 세계 주식시장은 폭락장세를 보였고, 미 행정부는 즉각적인 진화작업에 나섰다. 미 행정부는 현재 재정적자 감축을 논의중인 상태에서 신용등급 전망을 낮춘 것은 정치적인 판단이 개입된 결과라는 것이다. 특히 S&P가 야당인 공화당의 입장에 기운 나머지 무리한 전망을 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무디스와 피치 등 다른 신용평가사들이 미국 경제의 신용등급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이 늘 정확한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 동아시아 외환 위기시 이들 신용평가기관들은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하루 아침에 투기적 수준으로 깎아내림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자금을 구하기 어려웠고, 이자 부담도 커져 외환위기 극복 부담을 가중시킨 바 있다. 그동안 많은 국가들이 신용평가사들의 독단적인 결정에 반발하였고, 합리적인 기준을 새로이 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이들 미국계 신용평가사들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영업을 해왔다.

미국의 신용등급은 AAA로, 독일·프랑스·캐나다 등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향후 실제로 등급이 낮아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미국의 재정 적자와 국가 채무 누적의 문제점을 국제적으로 확인시켜 준 점은 높이 살 만하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일부를 제외하고 1990년 이후 미국의 국가채무는 꾸준히 증가해 왔으나, 최근들어 그 증가폭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늘어나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집권한 오바마 행정부는 재정 투입 확대로 경제를 살리는 정책을 추진함에 따라 국가부채가 5조달러 더 늘어나게 되었고 조만간에 15조달러 채무를 기록할 전망이다.

막대한 국가채무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금년에도 미국은 세수보다 4배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다. 2010년 기준 미국의 재정 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8%에 이르렀고, 국가채무 이자 지급에만 2천억달러가 필요하다. 미국이 달러 발행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면 벌써 파산했을 것이다. 아무리 달러를 찍어 국가채무를 메워 나가고 있지만, 이러한 악순환이 지속될 수는 없다. 공화당은 재정 적자 감축을 주장하는 반면, 집권 민주당은 재정건전성을 높이게 되면 복지지출을 줄여야 하고 이는 서민들의 어려움을 더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하여 재정적자 감축에 반대하고 있다. 공화당이 주도하여 만든 예산 감축안이 하원을 통과했지만,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상원에서는 부결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 재정적자 감축 논란은 앞으로 상당기간내 해결되지 않을 전망이다. S&P는 바로 이 점을 고려하여 '부정적' 전망을 내렸고, 만약 재정적자를 합리적인 수준에서 통제하지 못할 경우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S&P의 발표 이틀후 미국 주식시장은 안정을 찾은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단기적으로는 세계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가 계기가 돼 각국이 재정건전성 개선을 위해 지출을 줄일 경우 세계 경제성장률이 둔화될 수 있고, 달러 가치가 약세로 돌아서면서 원화 가치가 올라 우리나라 수출경쟁력이 악화될 수 있고, 석유 등 원자재값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 미국 등 다른 국가에 비해 우리나라의 재정건전성이 양호한 편이지만, 외국의 사례를 참조하여 재정건전성 제고에 정책적 우선순위를 부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