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충도 속의 가지는 한 포기에 모두 세 개가 그려져 있는데, 꽃 핀지 한 달 반이 되어 크기는 한 뼘이 넘고 자주색 때깔이 잘 들어 막 따내도 될 잘 익은 가지 한 개와 꽃 핀지 달포가 얼마 지나 자주색 물이 반쯤 든 가지 한 개, 그리고 이제 꽃 핀지 보름이 지났을 것 같은 어린 풋가지 한 개를 포함하여 모두 세 개가 그려져 있다. 세 개의 가지는 시차를 두고 자주색 물듦 정도와 가지의 크기로 성장의 차이를 해부학적으로 세밀하게 표현해 내고 있는데, 이런 세밀한 붓의 터치는 화가가 가져야할 소양 중의 하나인 세심한 관찰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신사임당 초충도의 가지는 그것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사대부의 부인인 신사임당이 가지, 수박, 오이 등의 텃밭채소를 세밀화로 그릴 수 있었을까? 그것은 필시 신사임당이 직접 텃밭을 가꾸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2009년 6월, 한국은행은 이제 막 따도 될 잘 익은 초충도의 텃밭 가지를 최고액 5만원권 화폐에 신사임당 초상화와 함께 넣어 텃밭의 아름다운 정취를 담아내었다. 새로 발행된 5만원권에는 전면에 가로로 맨 오른쪽에 신사임당 초상화가 자리하고 왼쪽 바로 옆에 초충도의 잘 익은 가지가 있고, 가지 바로 옆에는 농익은 포도송이와 커다란 포도 잎을 그린 묵포도도를 배치하여 소박한 텃밭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다.
뒷면 그림은 신사임당의 작품이 아니고 동 시대의 두 사람의 그림을 집어넣었는데, 그 중 하나는 어몽룡(魚夢龍, 1566∼?)의 작품으로 세로로 배치하여 커다란 보름달 아래 피어 있는 매화를 힘 있게 그린 월매도(月梅圖)와 이정(李霆, 1541~1622)이 그린 풍죽도(風竹圖)라는 작품으로 세찬 바람에 스산하게 흩날리는 대나무를 겹치게 배치하여 동양화의 서사시적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신사임당이 직접 일군 텃밭은 초충도를 통해 100여년 만에 숙종이 기거하는 궁궐로 들어갔고, 그 후 500년이 지난 2009년 6월에 한국은행에서 최고고액권 5만원권에서 부활하였다. 이것은 단순히 초충도의 부활이 아니라 도시 텃밭의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신사임당 초상은 최고액 화폐인 5만원권에 들어있고 그의 아들 이이선생의 초상은 5천원권에 들어있다. 율곡 이이선생의 집안은 2대에 걸쳐 한국은행 화폐 속 초상화를 장식하여 가히 명문가라 아니할 수 없다. 텃밭을 가꾼 소박한 신사임당의 마음씨가 이이선생과 같은 훌륭한 2세를 낳지 않았을까? 올해 내 텃밭에는 가지를 어디에 심을까? 벌써부터 내 마음은 텃밭으로 달려가며 봄을 손꼽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