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최태원 회장이 선물 투자로 1천억원 이상의 손실을 낸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어떤 선물 상품에 투자했다가 낭패를 봤는지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선물은 장래의 일정한 시점에 특정 상품 또는 금융자산을 계약상 정해진 가격에 넘겨 주거나 받는 조건에 따라 거래하는 상품이다.
주식, 채권, 통화 등의 금융자산이나 원유, 금, 옥수수 등의 원자재 등의 현물 상품을 기초자산으로 한 선물 상품이 세계적으로 거래되고 있다.
선물은 현물의 변동성을 완화하고 위험을 분산하기 위한 수단으로 설계됐으나 지금은 투기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가격이 오르면 이익을 내고 내리면 손해를 보는 현물 상품의 단방향 위험을 줄이는 기능 덕분에 가격이 내려도 이익을 낼 수 있고 올라도 손해를 볼 수 있다. 적절한 선물 거래를 통해 현물의 방향성 위험을 분산할 수 있는 순기능이 있는 셈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선물 그 자체가 막대한 규모의 시장을 형성하면서 헤지 기능을 도외시한 투기적인 요소가 상당히 강해지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적은 증거금만 내도 수십 배에 달하는 레버리지 거래를 할 수 있어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꾼들이 몰려드는 시장으로 변질했다는 지적도 있다.
1995년 일본 고베에서 대지진이 발생한 직후 세계 최대 은행인 영국의 베어링이 침몰한 것도 투기적 선물 때문이었다.
베어링은행 싱가포르 지점의 선물 트레이더였던 닉 리슨은 자신의 손실을 숨긴 채 만회하려고 닛케이선물에 과감한 베팅을 했지만, 대지진으로 주가가 폭락하자 한순간에 13억 달러의 손실을 냈다. 이 때문에 233년 전통의 베어링은행이 파산했고, 리슨은 `악마의 손'이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국내에서는 1996년 5월 증권거래소에 코스피200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지수선물 상품이 상장됐고 이후 채권, 통화, 금 등을 기초자산으로 한 선물 상품들도 거래되고 있다.
아직 국내에서는 수천억원대의 손실을 낸 사례가 없다. 선물 거래 때 주문 실수로 수십억원의 손실을 낸 기관투자자들이 있었지만, 거래 상대방과 합의해 파문을 줄이곤 했다.
'목포 세발낙지', '압구정동 미꾸라지' 등으로 불린 개인 투자자들이 선물 투자로 수백억원의 이익을 냈다는 얘기들이 나돌며 개인 투자자의 투기 매매를 부추기곤 했다.
국내 파생상품 전문가들은 이번에 막대한 손실을 낸 최태원 회장이 만일 국내에서 거래했다면 해당 상품은 코스피200선물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한다.
국내 선물시장에서 유동성이 풍부하고 거래가 활성화한 대표 상품이고 레버리지 거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국내 증권사의 한 파생상품 애널리스트는 "정확한 정보가 없어 추정하기가 쉽지 않지만 1천억원 이상의 손실을 낼 수 있으려면 거래가 대단히 활발해야 하고 유동성이 좋아야 한다. 국내에서는 코스피200선물이 거의 유일하다"고 말했다.
최근 사상 최고치를 연이어 깨며 상승 추세에 있는 코스피에 반대 방향으로 베팅(선물 매도포지션)을 했을 수 있다는 게 이 애널리스트의 분석이다.
재계 3위의 재벌 그룹 총수가 일정 정도의 정보 노출을 감내하고 국내 선물 시장을 통해 거래했을 가능성은 작다는 반론도 있다.
다른 증권사의 선물ㆍ옵션 연구원은 24일 SK그룹의 주력 업종이 정유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최 회장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원유 또는 달러 등의 통화 상품에 대한 선물을 거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국제 원유가격이 고공행진을 하자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란 기대에 원유 선물을 팔았다가 낭패를 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원은 "그룹 회장 정도면 관련 사업에 대한 정보가 집중될 것이다. 이를 이용해 거래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원유뿐만 아니라 달러 등의 통화 선물을 거래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한 선물사의 선물 트레이더도 "최 회장이 지인의 소개로 거래했다고 하지만 1천억원 정도의 손실을 낼 때까지 자신이 몰랐을 리는 없다. 투자에 상당 부분 관여했을 것으로 보이며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 대한 투자였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분석했다.
2004년 당시 손길승 SK그룹 회장도 회삿돈으로 대규모 선물 투자를 했다가 손실을 본 전력이 있다.
손 회장은 SK해운 자금 7천884억원을 11개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국외 선물에 투자했다가 막대한 피해를 본 것이다.
최태원 회장 도대체 어디에 투자했기에…
"코스피200 또는 원유ㆍ달러 선물 거래 유력"
2004년 손길승 SK그룹 회장도 선물로 거액 날려
입력 2011-04-2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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