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제2위 경제대국의 지위를 중국에게 빼앗긴 일본의 국가신용등급도 미국과 같이 하향국면에 놓였다. 지난 1월 27일 S&P는 일본의 장기국채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한 단계 강등했다. 2002년 4월 이후 8년9개월 만에 S&P가 일본 국가신용등급을 다시 낮춘 가장 큰 이유는 재정건전성의 악화에 있다.
미국, 일본과 달리 중국의 국가신용등급은 상승 국면에 있다. S&P는 작년 12월 16일 중국 국가신용등급을 기존 'A+'에서 'AA-'로 상향 조정하였다. 중국의 안정적인 재정 건전성과 막대한 외환보유고가 신용등급을 끌어올리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였다.
이러한 국가신용등급의 조정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2007년 세계금융위기 발생 이전부터 미국 신용평가회사들이 미국 국채에 대한 최고 신용등급을 부여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아주 낮은 금리로 재정적자를 보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세계 3위 경제대국이자 두 번째로 많은 외환보유고를 가진 일본은 자국의 국가신용등급이 중국·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 등과 동급이며 국가채무 불이행의 위험에 처한 스페인보다도 낮다는 점에서 신용평가의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가 지난 해 3분기 기준 198.4%로 미국의 92.8%보다 2배 이상 높지만, 국채 90% 이상을 국내투자자들이 소유하고 있어 재정위기의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위안화 평가절상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중국도 신용평가기관들이 세계금융위기를 일으킨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여태까지 하향시키지 않았던 점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 신용평가회사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 신용평가회사인 다공(大公)은 지난 해 7월 50개국에 대한 신용평가를 실시한 후 미국에 중국의 AA+보다 낮은 AA를 부여하였다. 다공은 그 해 11월 9일 미국 정부의 부채 상환 의지와 능력이 약화되었으며 제2차 양적완화 정책으로 달러화 가치 하락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이유로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로 하향시켰다.
일본과 중국의 미국 신용평가기관 비판은 세계금융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왜냐하면 투자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신용평가사의 국적이 아니라 채권발행국의 재정건전성, 물가안정과 같은 기본지표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채권투자자들은 신용평가기관들보다 먼저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미국 최대의 채권투자회사인 핌코(PIMCO)다. 지난 2월 이 회사는 2천360억 달러 규모의 주력 펀드에서 미국 국채 관련 투자를 전량 매도하였으며, 3월에는 선물까지 공매도했다. 이런 투자전략은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미국 국채를 대량 매수하는 제2차 양적완화 정책이 종료되게 되면 미국 국채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에 근거한 것이다.
핌코의 이런 비(非)애국적 투자전략은 국가신용등급이 궁극적으로 신용평가기관들이 아니라 채권투자자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신용평가사의 애국심에 기대어 시장의 심판을 회피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지난 14일 발표된 '토종' 한신정평가의 국제신용평가는 국내 최초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지만 국제금융시장에서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