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같은 인문학 열풍은 1980년대의 사회과학 열기에 비견할 만한데, 사회과학 열풍의 진원지가 대학이었다면, 인문학 열풍은 기업과 사회전반의 현상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또한 본래 이공계 중심으로 출발했던 대학에서 학제를 개편하여 인문학 과정을 강화하고 통섭인문학 혹은 융복합 과정으로 인문학과 과학의 융합 시도도 늘어가고 있다. 이쯤하면 인문학은 위기가 아니라 가히 르네상스를 맞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문학 열기가 이례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이미 1990년대에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 열풍이 그 조짐을 보여 주었듯이, 물신주의로 황량해진 우리 삶의 내면과 환경을 되돌아보려는 대중적 욕망의 흐름은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압축 성장의 신화를 창조했지만, 정작 주인공들에게 질주하는 기관차처럼 오직 속도와 성과만 요구해왔다. 경제 위기 이후에 파급된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개인이 삶의 가치나 사회적 정의를 고민하는 것을 사치처럼 여기게 만들었다. 그 점에서 본다면 최근의 인문학 열풍은 가장 비인문학적인 시대에 불고 있는 수상쩍은 흐름인 셈이다.
인문학 열풍을 유도하는 진원지 중의 하나는 기업이다. 기존의 정보산업을 넘어 창조산업(문화산업) 중심으로 급속하게 이동하고 있어 효율성 중심으로 경영해온 기업이 세계적 경쟁력을 지닐 수는 없다는 것을 경영자들이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의 인문학 열풍이 자본과 기업의 갱신의 수단으로 동원되어 '인문정신' 본연의 기능과는 무관하게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정부가 추진해온 '인문한국 프로젝트'도 인문학 진흥의 한 계기이다. 이 지원사업도 본래 목적과 달리 과제의 선정과 평가에서 정치적 판단이나 관료적 관점이 개입하여 인문학과 연구자들을 순치(馴致)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인문학 열풍이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정작 인문학연구의 본산이 되어야 할 대학의 인문학 관련학과의 입지는 위축되고 있으며, 학제 개편시 우선적 통폐합 대상이 되고 있다. 교양 강좌에서도 문학과 역사, 철학 과목 대신 취미나 취업 관련 인기 과목을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시민대상의 인문학 강좌와 출판물이 인문학을 대중화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나 상품화의 길을 걸어갈 때 시장논리에 편승하여 호기심이나 위안물이 될 가능성도 엄존한다.
인문학이 황폐해진 현대인의 영혼과 삶의 환경을 재성찰하는 에너지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런데 인문학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는 일과 인문학의 실용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목표로 삼아야 하지만, 전자가 더 근본적이라는 점을 망각해서는 곤란하다. 그 점에서 본다면 우리사회의 인문학 열풍 현상을 가장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주체는 대학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대학은 산업화 사회를 거치면서 기업과 사회의 분업 구조를 대학에 이식하여 인력양성소처럼 만들어 오지 않았던가? 인문학은 지식이나 기술과 달리 인간과 사회를 총체적으로 관조하고 거기에서 얻어지는 지혜의 학문이라는 점을 재확인해야 한다.
인문학자들의 과제는 단순히 인문학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시민들과 인문학적으로 사유하는 방법을 토론하는 일이다. 시민들은 고전 읽기를 통해 과거를 재조명하고 현재와 미래를 투시하는 힘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일, 그 가치를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현장에서 실천하기 위한 지혜에 대한 목마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