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섭 (아주대 교수)
[경인일보=]연세가 들어서 몸이 불편하거나 노인성 치매가 있어 혼자서 자신의 일상생활을 해나가기 어려운 부모님의 경우에, 아들과 며느리가 이러한 노인들을 장기간 가정에서 편히 모실 수 있는 좋은 방안이 별로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닌가 한다. 요즈음은 정부가 이들을 돕기 위한 파견 간병인이나 노인병원, 요양원 위탁 등을 지원하고는 있지만, 자식된 입장에서는 경제적인 문제는 둘째로 하고라도, 이 또한 마음이 편하지 않아 여러 가지 갈등들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효도라고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떤 마음가짐이 연로하신 부모님을 편하게 모시는 것일까?

명절 때나 혹은 아끼는 제자의 결혼 주례를 맡았을 때 등 1년에 두세 번쯤 나는 한복 정장을 예복처럼 차려입고 외출을 한다. 그럴 때마다 격식대로 대님과 옷고름을 매는 일이 번거롭기도 하려니와 순서를 잊어버려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요즈음 새로 나온 개량(?)한복들은 이러한 불편을 덜기위하여 옷고름이나 대님 대신에 단추걸이나 똑딱단추 등을 달아 놓았지만, 마치 '갓쓰고 자전거타는 격'이 되어 어쩐지 편안하지 않은 느낌이 들어서 나는 이 또한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지난 번 추석에도 선영(先塋)에 성묘를 하려고 한복을 입던 중, 외투격인 두루마기의 옷고름을 매려고 여러 번 시도를 해도 그리 신통치 않게 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겸연쩍게 웃으며 90을 바라보시는 노모(老母)에게 다가가서, "어머니, 이것 좀 해 주세요"하고 도움을 청하니, 잘 보이지도 않는 눈에 떨리시는 손으로 옷고름을 반듯하게 매어주시고는 빙그레 웃으시며, "박사에 교수인 사람이 이것도 못하시나?"하시며, "내가 앞으로 이제 몇 번이나 더 자네의 옷고름을 매어 주겠는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외아드님을 사고로 먼저 앞세우신 후, 벌써 십 수년 전에 돌아가신 나의 할아버지께서도, 그때 이미 50이 가까웠던 이 손자가 출근할 때마다 "얘, 차 조심해라, 세끼 잘 찾아먹고 다녀라"는 등 여러 가지의 당부를 하시었고, 동료들과 한 잔하고 늦게 퇴근할 때는 손자가 걱정이 되어, 추운 겨울에도 주무시지도 않고 사랑방 툇마루에 앉아 기다리시곤 하셨다.

이순(耳順)의 문턱을 몇 년 전에 넘기고, 정년 퇴임도 얼마 남지않은 지금에서야 '철나자 망령(妄靈)'이라고, 작고하신 나의 조부님과 늙으신 어머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으니, (철이) 늦게 들어도 한참 늦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된다.

부모에게는, 이미 장성(長成)하여 사회에서 한 몫을 하고 있는 자손들도 물가에 내놓은 어린 아이일 수밖에 없으니 걱정이 되시기도 하고 또, 같이 늙어가며(?) 머리가 허옇게 되어버린 아들을 바라보시면, 자신의 남은 생(生)이 길지 않음을 느껴 서글퍼지기도 하는 법인가 보다. 마음을 비우시고 곱게 늙어가시며, 때를 기다리시는 노모의 모습을 바라보면 한 편은 애처롭기도 하고 또 한 편 존경스럽기도 하다.

"어머니, 아무리 잘 하려고 해도 제 옷고름이 제대로 매지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자주자주 예쁘게 매 주세요. 십 년 아니 백 년이 지나도 저는 어머니의 철없는 아이일 뿐입니다. 혹시라도 손에 힘이 빠지시면, 말씀으로 아니면 눈빛만으로라도 꼭 매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