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생상품 시장이 기형적으로 성장한 탓에 사제폭탄 폭발사건이 발생할 정도로 사회적 부작용이 심각해졌다.

   파생상품은 말뜻 그대로 기초자산에서 파생된 것으로, 주식이나 채권 등의 가격변화 위험을 줄이고자 설계된 보조상품이다. 하지만, 시장 분위기가 한탕주의에 치우쳐 본래 취지는 실종돼 지금은 투기판으로 변질됐다.

   작년 11월 독일계 도이치증권의 `옵션쇼크 사태'에서 시작해 주식워런트증권(ELW) 불공정거래,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선물거래 손실 등 파생상품시장의 잡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개인 투자자들이 `로또'를 꿈꾸며 하루 30조원 가량을 파생상품 시장에서 배팅하고 있으나 정보력과 전문지식이 부족한 데다 투자 금액이 작아 거의 예외 없이 돈을 잃고 있다.

   ◇ 개미들 투자패턴은 대부분 `사제폭탄' 범인과 유사
   사제폭탄을 터트린 김모(43)씨는 전형적인 소액 개인투자자, 이른바 `개미'의 전형으로 볼 수 있다.

   의도적으로 사회 불안을 조장해 주가를 폭락시키겠다는 도 넘은 행동을 차치한다면, 개미들 투기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김씨는 옵션상품의 만기가 돌아오는 지난 12일을 범행 날짜로 고르고, 전날 코스피200지수 277풋과 275풋을 사들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지수를 `277'과 `275' 값에 팔아치울 권리로, 지수가 이보다 낮은 가격으로 내려가면 정해진 값에 팔아 수익을 낼 수 있다.

   김씨가 풋옵션을 매수했던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범행 당일 지수가 4%대 이상 급락해야만 `대박 '이 나는 구조였다. 김씨의 기대와 달리 지수는 2%가량 내리는데 그쳐 손실이 불가피했다.

   김씨처럼 수익이 생길 가능성이 극히 낮은 가격대를 `외(外) 가격'으로 부른다.

   극단적인 선택을 빼면 다른 개미들의 매매도 김씨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투자증권 최창규 연구원은 "지수가 오를 때에는 계단식으로 오르지만, 내릴 때에는 일시에 주저앉는다. 외국인ㆍ기관과 달리 개인투자자들은 외가격 상품을 많이 산다"고 설명했다.

   모 증권사 영업부 차장은 "요즘에도 선물ㆍ옵션 거래를 하고 싶다고 찾아오는 고객이 간혹 있다. 딱히 기초지식도 없는 상황에서 투자를 생각하는 것을 보면 황당할 뿐이다. 이들이 사는 종목은 주로 외국인과 기관이 외면하는 외가격대 상품"이라고 전했다.
  
   ◇ 하루 30조 투기거래 성행
   김씨와 같은 투기 행태는 이미 수십조 원의 규모로 커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파생상품시장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들어 33.3%(거래량 기준)로 외국인(34.4%)이나 기관(32.4%)과 어깨를 견준다.

   금액으로는 개인이 코스피200 선물을 하루 평균 27조4천517억원어치, 코스피200 옵션은 1조2천104억원을 거래했다.

   옵션만기일에는 대박을 노린 거래가 더 활발해진다.

   김씨가 사제폭탄 범행을 일으킨 12일 개인의 옵션거래액은 1조5천억원에 달했다. 3월 만기일에는 1조6천억원, 4월 만기일에는 1조8천억원을 웃돌았다.

   파생상품별 불균형 문제도 시장의 기형적 구조를 잘 보여준다.

   코스피200 선물ㆍ옵션에 편중된 현상이 심각해 코스피200 선물과 옵션은 지난해 거래량이 각각 8천680만계약, 35억2천590만계약에 달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주식선물과 국채선물은 각각 4천470만계약, 2천790만계약 거래되는 데 그쳤다.

   거래소는 이달 초 파생상품시장 개설 15주년을 맞아 그간 이룬 급성장을 보여주는 보도자료를 냈으나 투기적이면서도 기형적 구조는 이를 무색하게 했다.

   ◇ 개미들 희생 대가로 `하우스만 돈 번다"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개인투자자가 파생상품 시장에 성급하게 뛰어드는 것은 파생상품시장의 구조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도이치증권이 `옵션쇼크 사태'를 일으켜 폿옵션에서 40배 차익을 남겼다는 소식도 개미들의 투자심리를 부추긴 것으로 보인다.

   파생상품시장은 승자와 패자가 명확하게 갈리는 `제로섬(합계 영) 게임'이다. 주가가 오르면 주주가 모두 수익을 보는 주식 현물시장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주목할 부분은 일정한 수수료가 부과된다는 점이다. 거래량이 늘어날수록 수수료가 쌓이면서 투자자들의 전체 부(富)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증권사 차장은 "밤새 5명이 `고스톱'을 친다면 선수 1명과 자금을 빌려주는 `하우스'만 돈을 벌게 된다. 파생상품의 승자는 극소수 전문 투자자뿐"이라고 설명했다.

   하우스란 증권사와 한국거래소 등을 말한다.

   한국거래소는 코스피200 선물에 대해 거래대금의 0.0002626%, 옵션은 프리미엄의 0.0109440%의 수수료를 부과한다. 이를 개인의 코스피200 선물 거래대금에만 적용하면 거래소가 이로부터 얻는 수익은 하루평균 7천200만원에 달한다.

   그러다 보니 거래소나 증권사들도 파생상품 시장의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시장 활성화를 외치는 모순에 빠졌다.

   자금 규모에서는 개인들은 `종자돈'이 작다 보니 수익률에 초점을 맞추는 `단타 매매'에 주력하고 결과적으로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다.

   파생전문가인 강태욱 아데나에셋매니지먼트 대표는 "자금 규모가 굉장히 중요하다. 수백억원을 보유한 기관은 시장 추세에 투자하는 `포지션 트레이딩'이 가능하지만, 수억원을 굴리는 개인은 치고 빠지는 거래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런 거래로는 전혀 수익을 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