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명구 (아주대 교수)
[경인일보=]우리 집은 외식하는 횟수로만 치자면 대한민국 하위 10%에 속할 것이라는 자신이 있다. 웬만하면 집안 식구들이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끼는 집에서 먹는다. 손님이 방문하면 당연히 집에서 대접한다. 밖에 나가 대접하는 것 보다 정성 담긴 집 밥이 낫다는 판단이다. 10대 종손인 나는 가족 모임도 집에서 하길 좋아한다. '와서 반갑고 가서 더 반갑다'는 옛말이 결코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일 년이면 몇 차례 오랜 세월을 그러고 살았다. 게다가 회의 등 외부 약속이 없는 날이면 도시락이 당근이다. 심지어 각각 다섯 살 터울의 아이 셋을 키우면서 예외 없이 중고교 시절 야간 자율학습을 시키지 않았다. 집안 식구들이 저녁을 같이 먹을 행복한 권리가 강요된 상급학교 진학보다 중요하다는 나의 감언이설에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다음 날 아이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단비야 어제 저녁 잘 먹었니?"

사정이 이러하니 결혼 생활 3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김치고 밑반찬이고 조리된 식품을 사서 먹은 기억이 별로 없다. 된장, 고추장, 간장에 식초까지 직접 담가 먹는다. 내 눈에 집 사람 손은 만지면 모든 것을 금으로 바꾼다는 미다스(Midas) 왕의 손처럼 만지면 모든 것이 맛난 음식이 되는 반찬 손이다. 아이 셋에 같이 공부까지 한 아내를 착취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리 혹사시키는 사람이 뭐 잘났다고 용감하게 떠들어 대냐고 타박을 넘어 협박을 받을 수준이다. 그러나 나도 아주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굳이 외식을 싫어한다기보다는 집 밥이 밥집 밥보다 더 맛나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아이들도 그리고 밥을 해대는 당사자인 아내도 꼭 같은 소리를 한다. "라면을 먹더라도 집에서 먹는 것이 낫지" 라고 말이다.

그러나 집 밥이 밥집의 밥을 앞서는 것은 아내의 손맛에 길들여진 입맛의 문제만은 아니다. 뼈저리게 느끼는 것인데 집 밥을 식구들이 둘러 앉아 같이 먹는 것은 그냥 음식을 먹는 게 아니다. 서로의 관심과 사랑을 먹는 거다. 밥이 밥이 아니라 가족 해체를 막는 사랑의 응고제인 것이다. 방과 후 학원 가는 길에 걸어가며 홀로 먹는 햄버거나 피자 '쪼가리'를 어찌 둘러앉아 젓가락, 숟가락 부딪혀 가며 먹는 조촐한 된장찌개 저녁 밥상과 비교할 건가.

집 밥의 고마움은 예서 그치지 않는다. 집안 식구들이 도와가며 같이 만드는 음식 만들기는 즐거움이고 수업료 받지 않는 예술 교육이다. 손끝에서 시작하여 혀끝에서 마감하는 미각의 예술은 도제식 수업과 같이 오랜 세월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얻을 수 있다. 요리책에 나온 '몇 테이블 스푼을 몇 분간 어쩌고…'를 보고 만든 신혼의 식사가 사랑의 감칠맛만 뺀다면 수 십 년 경력 주부 구단의 밥상과 비교 불가능한 이유다.

나의 집 밥 찬양은 더 나아가 거창한 이념에까지 다다른다. 인류사에 시장경제 체제가 등장하자 사는 곳과 일하는 곳이 달라지면서 가족이라는 공동체는 사회속의 한 개인으로 해체되었다. 내 보기에 한국은 이른바 직주분리(職住分離)를 통한 먹을거리의 시장화가 가족해체로 이어지는 안타까운 전범(典範)이다. 이런 의미에서 내가 집에서 직접 내 손으로 밥을 해먹는 것은 (편리하지만 좀 감시가 느슨해지면 나를 파괴하려는) 시장의 압제로부터 나를 지키는 즐겁고 또한 준엄한 저항의 몸짓인 것이다.

욕 먹을 거리가 한 둘이 아닌 글임을 잘 안다. 주부가 무슨 음식 노예냐, 누구는 같이 밥 먹기 싫어 그러느냐, 먹고 살려니 그렇지, 그렇게 고상한 당신은 뭘 하느냐, 밥 집하는 사람 다 굶겨 죽이려는거냐…등등 끝이 없다. 나의 답은 이렇다. 양 쪽 모두 이유야 대려면 끝이 없지요. 제가 해보니 좋더라구요. 실은 저도 가끔씩은 외식합니다. 더 이상 외식하지 않기 위해서요. 밥집 밥 먹어보면 집 밥 좋은 것을 알게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