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천재지변 등으로 정전이 되면 고객들은 바로 한전에 전화를 한다. 전화하는 사람은 본인은 혼자라고 생각하겠지만, 한전은 일시에 폭증하는 전화로 통신이 마비되고 그로 인해 또 다른 민원의 연쇄 폭발이 일어난다. 하지만 한전은 그런 고객들의 불만과 민원을 겪으면서 꾸준히 개선을 위한 기술개발을 추진한 결과 이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전기품질 공급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호당 정전시간, 송배전 손실률 등의 수치를 비교해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전기품질 뿐만 아니라 전기요금에 있어서도 세계적으로 제일 저렴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여년 전 한전의 목표가 '에너토피아 달성'이었는데, 이제는 최고의 품질을 최저의 요금으로 공급할 수 있는 그야말로 '에너토피아'의 시대를 향유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자원빈국'이다. 게다가 요즘은 중동지역의 정치 불안 등으로 원유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전기는 이런 비싼 원유를 수입해서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을 들여 건설한 발전소에서 전기로 변환하고 이를 다시 민원덩어리인 송전선로와 배전선로를 통해 공급하는 프리미엄 에너지이다. 다시 말해서 원가 면에서 근원적으로 매우 비싼 에너지인 것이다. 그런데도 1차 에너지인 석유나 등유 보다 전기요금이 싸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익이겠지만 국가적으로는 에너지 효율 저하와 과소비 등으로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누적되어 국민 개개인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우려가 높다.
현재 전기요금은 100원에 생산된 전기를 86원에 판매하고 있다. 이는 전기판매가 늘어날수록 적자가 커지는 구조다. 혹자는 한전이 급여반환 등 강력한 구조조정으로 적자를 메워야 한다고 하지만 원가 중 연료구입비가 80%이상을 차지하는 전력원가 구조상 2~3%에 불과한 인건비를 조정하여 엄청난 적자를 보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럼에도 한전은 11%의 인원감축과 임금동결 등 강도 높은 자구노력을 펼치고 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전기난방과 같은 비효율적 소비행태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석유 난방식 대부분이 열 에너지로 전환되지만, 전기난로의 경우 전기 생산을 위해 투입된 연료의 35%만이 열에너지로 전환되며, 이 같은 소비행태로 인해 연간 1조원의 국가적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 또한 비정상적으로 낮은 요금수준은 사업자인 한전의 미래성장동력 마저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한전은 매년 강도 높은 원가절감 노력으로 1조4천억원 정도의 비용을 절감하고 있지만 연료비 급등에 따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3년째 적자를 기록했다. 지속적인 재무상황 악화는 UAE 원전수주로 건실히 쌓아올린 한국전력의 대외 신인도를 깎아 내려 해외 진출의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이다. 비현실적으로 값싼 전기요금은 에너지 소비 비효율, 환경오염, 성장동력 저하 등으로 누적된 추가비용을 다음 세대에게 전가하며 누리고 있는 것이다. 전기요금의 조속한 현실화로 한쪽으로 기운 '세대간의 형평'을 맞추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