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73년의 베트남 전에서 미군은 무려 10만 톤의 고엽제 폭탄을 투하, 기형아 출산만도 5만여 명에다 후유증에 시달리다 죽거나 아직도 앓고 있는 사람만도 200만이 넘는다. 정글을 없애 베트콩의 게릴라전을 막고 그들의 식량을 태우는 게 목적이라고 했지만 극심한 생태계 파괴와 유전적 장애 등 후유증이야말로 비극의 극치였다. 유엔이 제네바의정서에서 금단 화학무기로 규정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국이 실험하려던 고엽제 폭탄 대상 지역은 원래 2차대전 말기 일본의 혼슈(本州) 곡창지대였다는 게 미국 현대사 연구의 권위자인 스탠포드 대학 B J 번스타인 교수의 증언이다. 그는 '종전이 몇 달만 늦춰졌어도 미군은 그 무기를 실험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핵도, 원전도 그렇듯이 폐기문제 또한 심각한 건 고엽제도 다르지 않다. 1998년 4월 미국이 1만2천 갤런의 네이팜 폐기물을 연료로 재처리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주에서 인디애나 주로 옮기려다 불거진 지역 갈등과 반발의 사례만 해도 그렇다. 미 8군이 1978년 경북 왜관읍의 미군기지에 묻었다는 수백 개의 고엽제 드럼통의 진상이 한 점 숨김없이 밝혀지고 사후 처리에도 빈틈이 없어야 한다는 건 미군측이 너무도 잘 알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