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준호 (인천대 교수·경제학)
[경인일보=]최악의 사태를 맞은 일본

미증유의 대지진과 쓰나미로 일본사회가 휘청거리고 있다. 일본 동북지방에서 관동지방에 걸친 대재앙으로 사망자와 행방불명자는 수만 명에 달하고, 대재앙을 피하기 위해 피난소에 몸을 맡기고 있는 사람들도 무려 4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게다가 행방불명된 사람들을 파악하는 작업 역시 장기화되고 있다. 전후 최악의 사태다. 게다가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에서도 중대 사고가 발생해 방사성 물질 노출 및 전력 부족 위기에 직면해 있고, 일본이 '국책'으로서 추진해온 원자력 인프라 및 원자력 발전 행정에도 지대한 타격이 가해졌다.일본사회의 근간이 흔들릴 정도의 심각한 영향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인적, 물질적 피해 뿐 아니라 향후 일본의 사회경제 시스템에 미칠 영향 역시 매우 심각할 것이 분명하다.

물자 공급 위기에 직면한 일본

이미 일본 대지진 이전부터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는 러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의 가뭄현상과 브라질 등 남미 국가를 습격한 홍수 등 이상 기후 현상으로 전 세계 곡물 생산 역시 큰 폭으로 줄고 있으며, 나아가 중국과 인도 등과 같은 신흥국에서는 석유와 곡물에 대한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이 맞물려 전 세계 원유 및 곡물 가격이 급등하게 되었고, 내려갈 줄 모르고 있다. 이 같은 세계적 악조건하에서 일본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지진을 맞게 되었는데, 참사 이후 피해지역에 석유와 식량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으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대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지진의 직접적인 피해지는 물론 동북 및 관동 지역 전체에서 식량을 비롯한 물자 공급 전반의 위기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불안감은 더없이 커지고 있다. 단순히 식량 등 물자 수급에 대한 불안감을 넘어 생활 자체에 대한 불안감으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상실의 시대' 넘어 '사회적 공황'으로

이와 같은 일본 국민들의 심각한 불안감은 우리 언론에서 소개되고 있는 모습과 달리, 휘발유·등유·쌀 같은 기본 물자에 대한 경쟁적 사재기 현상을 낳고 있다. 일본 정부는 피해지역 이외 국민들에게는 사재기 자제를, 유통업자들에게는 석유제품의 시장 공급을 공식 요청하고 있을 정도다. 지진 피해지역에 있는 일부 일본 국민들이 보여준 '냉정함' 이면에는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많은 일본 국민들의 '서두름'도 자리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로 인해 피해지역과 인근지역의 물자부족 패닉현상은 일본사회 전체에 장래 생활에 대한 불안감을 확산시키고 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식량이나 석유제품 품귀 현상으로 불안해 본 적이 없는 일본인들에게 있어서는 치명적 상처로 작용하고 있다.

그동안 일본사회는 석유와 전기에 의존하는 생활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었다. 생활의 근간이랄 수 있는 석유는 100% 외국 수입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식량 역시 60%를 외국에 의존해왔다. 부유한 나라로 소문이 나 있는 일본의 에너지 및 식량에 대한 취약함이 이번 대지진에 의해 완전히 노출됐다. 이른바 'Japan as Number One'으로 불리던 1980년대 말까지 일본사회에 형성되어 있던 강한 자존심과 자신감은 그 후 약 20년이나 지속되고 있는 오랜 불황에 의해 많이 상실되어 왔다. 이런 와중에 닥쳐온 대지진 참사는 일본 국민들에게 더없는 상처를 안겨주며 자신감을 완전히 상실시키고 있다. 지금 일본은 이른바 '사회적 공황(Social Panic)'의 수렁 속으로 빠지고 있다.

사회적 공황, 극우주의를 낳을 수 있어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도래된, '잃어버린 세월'로 불리는 일본의 장기불황 하에서 일본 국민들은 자신감을 크게 상실하였으며, 이를 해결해보기 위해 단행된 일련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경제 회복은커녕 양극화 현상이 구조화된 이른바 '격차사회'를 도래시켰다. 이는 전후 일본 국민들이 자랑으로 삼던 '모든 국민이 중산층'이라는 '1억 총 중류' 인식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해 '상실의 시대'를 만들었다. 바로 이러한 일본의 사회심리적 상황이 고이즈미, 아베와 같이 '네오콘(neo-conservatives)'으로 불리는 극단적 극우주의자들의 전면 대두를 초래하였다.

이번 대지진으로 인해 일본사회는 이미 만연되어 있던 상실감이 깊어져 이른바 '사회적 공황'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이와 같은 일본의 상황이 자칫 이전보다 더욱 극단적이고 강한 극우주의자들을 불러내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