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봉 시대 통기타 문화의 특징은 공동운명체적인 의식을 가졌다는 겁니다. 그 환경에서 40여년 간 다져온 우리의 우정과 음악이 지금의 디지털 세대가 잊어버린 아날로그 시절의 문화를 회생시킨 겁니다."
가수 조영남(66)이 7일 정동의 한 카페에서 1960-70년대 포크 음악의 산실인 무교동 음악 감상실 '세시봉' 시절의 이야기를 담은 책 '쎄시봉 시대'(민음인) 출간 기자간담회를 열고 식지 않는 세시봉 열풍의 배경을 이같이 진단했다.
조영남은 "지난해 내가 진행한 라디오에서 송창식, 윤형주, 이장희를 불러 방송했더니 반향이 대단했다"며 "이후 지난해 추석 MBC TV '놀러와' 출연 제의를 받았는데 처음에는 '60대 노인들의 양로원 음악회' 같아 고민했다. 그런데 녹화 중 첫 곡을 부르고 나니 전혀 다른 상황이어서 깜짝 놀랐다. 기타를 거들떠도 안 보던 내 딸이 요즘 기타 학원을 다닌다"고 예상치 못한 반향에 놀라워했다.
이들에 대한 열기는 반짝인기로 사그라들지 않고 해를 거듭해 재조명되고 있다.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 씨가 세시봉 열풍을 '레전드의 소환'에 비유했듯이 그 중심에 있던 조영남의 책은 그 시절을 추억하는 세시봉 팬들을 위한 해설서처럼 생생한 증언이 담겼다.
조영남은 "한 마디로 이 책은 세시봉 친구들의 음악과 우정 이야기가 전부"라며 "우리의 삶을 걸러 나오는 것이 음악이니 우리는 나름 치열하게 살았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다"고 소개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세시봉 멤버인 윤형주와 김세환이 참석해 조영남의 이야기에 살을 붙였다.
포크의 역사를 주제로 역시 책을 쓰고 있는 윤형주는 '세시봉 친구들의 대변인'답게 세시봉의 반향에 대해 날카로운 분석을 내놨다.
"통기타 문화의 특징은 공동체 의식입니다. 이장희가 작사하고 송창식이 작곡해 윤여정에게 바치는 식이었죠.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작권은 생각지도 않고 제가 쓴 곡을 김세환이 듣고 '형 그 곡 나 주라'고 하면 곡도 주고 편곡과 연주에 코러스까지 해줬죠. 제가 김세환에게 '길가에 앉아서', 이장희가 '좋은 걸 어떡해', 송창식이 '사랑하는 마음'을 주는 식이었죠. 물론 김세환은 곡을 얻기 위해 잔 심부름을 하며 우리 앞에서 재롱을 많이 떨었습니다. 하하."
이어 윤형주는 "우리는 개인적이고 타산적인 세태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이해하기 힘든 나눔의 관계였다"며 "그게 요즘 세대에게 좋은 충격을 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최근 세상을 떠난 채동하도 'SG워너비도 세시봉 같은 우정을 갖고 싶다' 했다던데 이런 속성이 새롭게 보이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세환도 "당시 통행금지가 있어 세시봉이 끝나면 한 집에 모여 자연스레 기타를 쳤다"며 "한 구석에서 송창식, 윤형주 선배가 곡을 만들 때 '형, 내가 부를게'라고 하면 '그거 너 해라'며 노래를 줬다. 저작권을 생각하며 작곡할 때가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고 설명했다.
조영남은 이같은 우정 속에서 만들어진 세시봉 음악의 오늘날 가치에 대해 서슴없이 "믿거나 말거나 우리는 비틀스였다"고 강조했다.
"처음 우리는 팝을 번안해 불렀어요. 우리가 서양 음악을 국내로 들여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죠. 저와 이장희, 윤형주, 송창식은 번안곡이 기초가 돼 작곡을 시작했어요. 결과적으로 우리는 비틀스였죠."
책에는 맏형인 조영남을 비롯해 이장희, 윤형주, 송창식, 김세환, 김민기, 윤여정 등 세시봉 멤버들이 챕터별로 담겼다.
친구 조카였던 이장희는 '돈이 없으면 빚을 내서라도 장미 30송이를 상대의 가슴에 바치고 끝을 내야 하는 정열의 남자', 시인 윤동주의 6촌 동생으로 '6070 엄친아'인 윤형주는 '꼼꼼하고 치밀해 별명이 메모로, 옆에 있으면 만사가 든든한 친구', 첫 만남부터 신비의 사나이였던 송창식은 '피리부는 옛날의 김삿갓 같은 사람', 엄청 웃기는 막내인 김세환은 '일상이 화보였던 부잣집 도련님'으로 묘사됐다.
조영남은 40여 년간 이들과 우정을 유지한데 대해 "우리 중 윤형주와 이장희가 리더십이 있다"며 "이장희는 맛있는 걸 사주며 돈으로, 윤형주는 정신적으로 리드해가고 있다. 원래 김세환이 막내인데 요즘은 김민기보다 어린 김중만이 잔심부름을 한다"고 웃었다.
그는 가장 쓰기 힘들었던 대목으로 전처였던 배우 윤여정 편을 꼽았다. 세시봉에서 윤여정을 만난 그는 책에서도 '세시봉 이야기에서 윤여정을 빼면 앙코 없는 찐빵이 된다'고 했다.
"이 책을 쓰면서 가장 고민스러운 부분이었죠. 윤여정이 세시봉 남자들 사이에서 여자로는 나와 가장 가깝던 친구였는데 그걸 빼면 성립이 안되니까요. 그런데 윤여정이 MBC TV '무릎팍 도사'에 나와 제 얘길 한 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젠 써도 그렇게까지 뭐라고 안 그러겠구나'란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사실 우린 헤어진 후 한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데 얼마 전 윤여정과 초등학교 동기 동창인 이장희가 둘이 만난다는 얘기를 했는데 이장희가 미국에 가는 바람에 자세히 못 들었네요."
이어 윤형주는 "세시봉에서 여자로는 윤여정과 역시 배우였던 최영혜가 균형을 이뤘다"며 "우린 자유분방한 윤여정을 여자가 아닌 그룹의 일원으로 여겼다. 그런데 당시 입대한 조영남은 배우로 수입이 있던 윤여정이 면회하고 돌아갈 때 주머니에 돈을 넣어주자 사랑이 움텄나보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세시봉에 영입하고픈 후배 가수를 묻는 질문에 윤형주는 촌철살인 같은 한 마디로 정리했다.
"우리의 관계는 음악적인 자질과 테크닉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세시봉의 강점은 음악 수준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환경에서 만들어진 우정이라는 의미죠. 요즘 후배들의 인생관과 철학을 검증하지 않아 누굴 영입하겠다고 이야기하기 어렵네요."
이 말을 끝으로 세 사람은 조영남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윤형주의 곡 '우리들의 이야기'를 아름다운 하모니로 선사했다.
'밤하늘에 별 만큼이나 수많았던 우리의 이야기들, 바람같이 간다고해도 언제라도 난 안 잊을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