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수 (객원논설위원 인천학 연구원 상임연구위원)
[경인일보=]이상 도시에 대한 로망 혹은 도시에 대한 유토피아적 상상은 언제나 소중하다. 최근 도시문제와 폐단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지난 세기에 추구해 온 도시 패러다임에 대한 반성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으나 전면적이고 입체적 비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장기계획이 부재한 계획은 결국 전략없는 전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나 국가가 장기 전략이 없거나 단지 메타포로만 제시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비현실적인 이상주의도 문제지만 유토피아적 비전에 입각하지 않는 단기 계획들이란 말 그대로 대중추수주의나 유행의 모방에 급급해 지속성을 갖기 어렵거나 공공재원의 낭비로 귀착될 가능이 높기 때문이다. 사회의 변화속도가 수십 년의 미래를 예측하는 장기적 구상을 주저하게 하는 요인일 수 있다. 당파적 관점 때문에 의미있는 지난 정부나 타 정당의 정책이나 실험을 평가절하하는 경우가 많다. 참여정부가 공들여 만든 '비전 2030'이 현 정부에서 참고하거나 인용하지 않는 것이 그 사례다.

이상 도시의 꿈을 비현실적이라 할 수 있을까? 자동차 회사들은 모터 쇼에 출품되는 콘셉트 카(concept car)를 통해 회사가 지향하는 스타일과 기술적 목표가 무엇인지를 제시한다. 모터쇼에 제시되는 콘셉트 카는 당장 생산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미래형 모델이어서 상당수가 폐기되기도 하지만, 이상적 디자인과 기능을 매개로 자동차 회사는 소비자와 소통하며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 애리조나주 사막 한가운데 건설된 친환경 생태도시 '아르코 산티'는 사막위의 낙원으로 불리는 현존하는 유토피아 도시의 하나다. 생태건축학자인 파울로 솔레리가 설계한 아르코 산티 사람들은 태양열 에너지를 이용하고 유기농법으로 농작물을 재배하며, 차없이 걸어다니는 환경친화적 유토피아다. 이 미국판 무릉도원의 콘셉트를 일반적인 현대도시에 적용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생태적 가치의 극한을 실험해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아르코 산티는 현존하는 유토피아 도시라는 찬양을 받아 마땅한 것이다.

한국의 여러 도시가 모델로 삼고 있는 도시의 미래는 문화도시다. 한국의 경우 문화도시를 '문화 예술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도시'로 생각하고 있으나, 이 개념이 제기된 유럽에서 문화도시는 도시의 공공적 인프라가 얼마나 인간을 중심으로 설계되고 있으며 또 독창적인가 하는 기준으로 선정된다. 즉 유럽에서 문화도시는 특정한 이벤트가 아닌 도시 정책과 행위 속에 얼마나 많은 인간주의가 담겨져 있는가가 평가의 기준이 되고 시민의 일상의 삶과 도시의 공간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는가를 말해주는 척도였던 것이다. 문화도시의 핵심 가치가 인간주의의 구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의 인프라 중심으로 사고한 것은 유럽과 한국이 처한 환경적 차이에 기인한 것이다.

최근 새로운 도시 패러다임으로 부상한 창조도시론의 전략은 도시가 가진 고유 자원과 가치를 재발견하고 생산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 패러다임의 특징은 창조적 시민이야말로 미래도시를 구현할 자원이자 주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학습하는 도시'(learning city)가 부각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학습도시는 도시인들이 능동적으로 지식을 습득하고 공유함으로써 도시의 미래를 담당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능동적 학습이 도시와 사회 전체로 확대 심화될 때, 도시가 변화에 적응하고 장애물을 극복하며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학습도시란 도시 내부의 곳곳에 오류를 점검하고 반성하는 시스템을 구비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대표적 창조도시론자인 찰스 랜드리가 스스로 '반성하는 도시'로서의 학습도시가 창조도시보다 더욱 강력한 메타포(이상적 도시 비전)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