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인재 (파주시장)
[경인일보=]전기는 국민생활에 물이나 공기처럼 반드시 필요한 필수 공공재다. 그렇기 때문에 송전탑이나 고압선로 등은 매우 중요한 국가기간시설임에 두말할 나위없다. 하지만 이러한 시설을 설치하는 과정이 '일방통행'이다 보니 끊임없이 지역사회에 갈등을 낳고 있다.

현행법상 전원개발사업은 지역을 책임지고 있는 지자체와 사전에 충분히 협의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요식행위로 의견을 듣는다. 전원개발촉진법이 특별법이기 때문이다. 전원개발촉진법은 지식경제부 허가만 얻으면 개인 토지를 강제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하다. 그러다보니 사업시행 계획이 잘못됐다 하더라도 수정하거나 철회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일례로 몇해 전 파주시가 신포천~신덕은 고압선로 승인 신청에 대해 도시미관 저해와 지역발전 제한 등의 이유로 재검토를 요구하는 의견서를 보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환경문제와 삶의 질을 주장하며 집단민원이 끊이지 않아 파주시가 이러한 의견을 제출한 것이다. 그동안 파주시가 제안했던 송전선로 지중화와 노선 변경은 한 번도 반영되지 않았다. 최근 평택·용인·의정부 등에서도 유사한 민원이 발생하고 있으며 법적 다툼도 이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고압선로는 주거지역을 피해서 농지나 임야에 설치한다. 그러나 한 번 설치된 송전탑이나 고압선로는 이전하고 싶어도 철거나 변경이 어렵기때문에 도시계획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특히 파주와 같이 개발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도시는 이러한 시설이 지역균형 발전의 발목을 잡기도 한다.

과거 곡창지대였던 교하는 물론 자연경관이 수려해 환경보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법원 적성에 이르기까지 가는 곳마다 송전탑 천지다. 무려 348개로 경기도 31개 시·군 송전탑의 6%에 달한다. 1965년부터 설치되기 시작한 고압선로는 13개 노선 119㎞로 법적 영향을 받는 지역이 2천313만5천㎡를 상회한다.

향후 산업의 발달과 인구 증가로 전력 수요는 더욱 늘어나기 때문에 안정적인 전기 공급을 위해서도 송전설비는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지방분권이 자리 잡아가고 지역 주민들의 민주의식이 성장하는 만큼 중앙정부와 공기업의 일방적 사업 추진에 대한 반발은 더욱 확산될 것이다.

현행법상 고압선로 반경 30m이내의 토지는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 건축허가 등 행위시 한전과 협의를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고압선로 주변 200m 이내는 자기장, 유해 전자파로 인한 피해가 예상되므로 주택 건축을 제한하기도 한다.

송전탑 부지는 공익사업법에 의해 수용하고 고압선로 하부는 사용 보상을 하고 있지만 송전시설이 들어서면 땅값이 곤두박질친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송전탑 설치로 인한 산림훼손과 스파크로 인한 산불 발생이 잦아 산림지대에 설치하는 것도 부담스러워졌다.

따라서 지금과 같이 '일방통행'식으로는 집단 민원과 법적 소송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지방의 현실을 반영할 수 있도록 현재의 전원개발촉진법을 개정해야 한다. 현재 승인 또는 변경 승인을 신청하기 전에 사업시행 계획을 열람시키고 설명을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자체장이 전원개발사업 실시 계획을 승인하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이미 송전설비가 설치됐다 하더라도 지자체가 전략적으로 개발하는 지역은 지중화(地中化)를 의무화해야 장기적 발전을 꾀할 수 있다.

과거 국가시설은 개인이 어떠한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당연하게 여겼다. 송전탑이나 고압선로가 들어오는 것을 기념해 마을 잔치를 여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집단민원이나 법적 대응을 불사하는 요즘 시대에 특별한(?) 대우만 고집한다면 사회 갈등의 골만 깊어질 것이다. 지자체에 권한을 나누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