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진갑 (경기문화재단 문예진흥실장)
[경인일보=]지난 주말 늦은 밤, 한 무리의 문화예술인들이 수원시 인계동에 있는 한 빌딩에 모여 파티를 하였다. 빌딩 4, 5층과 옥상에 '인계 마켓'이라 이름 붙인 예술인들의 작업실과 공방에서 예술로 재생된 별별 것들을 파는 시장이 열린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인계 마켓'의 공간 구조가 특이하였다. 중앙에 홀이 있고, 사방으로 작은 방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으며, 지금은 작가들이 작업 공간으로 리모델링하였기에 그 흔적만 남아 있지만 이전에는 방마다 욕조와 침대가 있었다 한다. 공간 구조가 수상쩍어 물어보니 안마시술소였다고 한다. 안마시술소가 문화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혐오 시설이 문화공간으로 전환한 사례는 많다. 오스트리아 빈의 슈피텔라우 쓰레기 소각장은 쓰레기 소각장 기능을 하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여 많은 이들이 찾는 문화관광시설이 되었다. 서울의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은 서울시와 시민단체가 합심하여 하늘 공원이라는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것이 그 예이다. 이곳에는 평화, 하늘 등의 테마를 가진 공원과 야외공연장 등이 갖추어져 있다. 그런데 퇴폐 업소가 문화공간으로 바뀐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2006년 가나아트 센터가 경기도 장흥에 있는 러브호텔을 구입해서 미술인들의 창작스튜디오로 리모델링하여 작가들을 입주시켜 창작 활동을 도운 사례가 있다. 2009년에는 해태제과가 이곳의 러브호텔을 구입하여 새로운 아트 밸리로 조성하였다.

'인계 마켓'은 작가들이 창작 활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한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장, 제작한 작품은 물론, 대중의 주문을 받아 작품을 제작하여 판매하는 미술시장도 겸하면서 교육도 한다. 입주 작가들의 면면도 다양하며 에너지도 넘친다. 겹벌이로 목수일을 병행하고 있다는 작가는 버려진 폐가구를 모아 마켓에 필요한 가구를 만들고 있었고, 또 다른 작가는 헌 옷과 버려진 현수막을 이용해서 재활용 의상, 가방을 제작하고 있었다. 유리를 즐겨 다루는 작가는 빈 병이나 깨진 유리를 재료로 사용하여 조명 작품을 만들어 팔기 위해 전시하고 있다. 바리스타이기도 한 종이 작가는 주민을 대상으로 커피 관련 강좌를 열려고 한다.

이들은 스스로 순수예술의 벽을 허물고자 하며, 소통과 협업을 중시하고 있다. 그래서 공간도 일반 대중에게 개방하고 있다. 입주한 작가간, 작가와 마켓 방문객간의 협업과 교감은 물론이고 거리에 나가 주민들과 대화하며 협업도 시도하고 있다. 인계동에는 유흥업소가 많다. '인계 마켓' 주변에는 많은 대리기사들이 손님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는데, 이들 대리기사들과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며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 지금 '인계 마켓'의 김월식 촌장은 '발칙한 상상'을 하고 있다. 주변 유흥업소 종업원들과 소통과 교감을 주제로 워크숍을 하고 공연할 것을 꿈꾸고 있다. '인계 마켓'은 도시가 물려 준 음성적인 소비 공간을 예술을 생산하는 양성적인 공간으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음지에 있는 사람들을 양지로 끌어내어 예술가로 만드는 일까지 시도하고 있다.

'인계 마켓'이 있는 곳은 나혜석 거리이다. 나혜석은 수원이 낳은 화가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다. 조선미술전람회에 특선으로 입상하여 화가로서 재능을 인정받았고 소설가로서도 활약을 하였다. 그러나 남편 친구인 최린과 바람을 피워 이혼을 당한 후, 최린을 상대로 정조를 유린한 데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공개적인 글을 발표하여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홀로 최후를 맞은 슬픈 예술가이다. 나혜석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 선각적 예술인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나혜석 거리에 나혜석 동상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혜석 거리에 나혜석 동상은 있으나 나혜석은 없고 술집만 있다고 안타까워하였는데, 어쩌면 앞으로 이 거리에서 제2, 제3의 나혜석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