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문명의 발원지인 그리스가 유럽경제의 골칫거리로 전락하게 되는 계기는 2002년 단일화폐 유로(euro)에 가입한데 있다. 유로에 가입함으로써 독일, 프랑스와 동일한 국가신용등급을 받을 수 있게 된 그리스 정부는 국제금융시장에서 더 낮은 이자로 자금을 빌릴 수 있었다. 이렇게 빌린 돈으로 그리스 정부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과 같은 대규모 프로젝트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였다. 그 결과, 그리스 정부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었다.
2007년 미국에서 발원한 세계금융위기가 유럽으로 전염되면서 그리스 정부는 더 이상 예전처럼 낮은 이자로 자금을 빌릴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경기까지 침체되어 국가채무 불이행 위험이 급증하자, 2010년 5월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은 그리스에 구제금융을 제공하였다. 지난 1년 동안 그리스 정부는 위기의 원인인 방만한 재정운용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리스 정부는 또 한 차례 더 구제금융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스가 또 구제금융을 요구하자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번에는 더 강력한 재정적자 축소, 세금 인상 및 민영화를 요구했다. 또한 이들은 그리스 정부가 이 방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기 전에는 지원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못 박았다. 이런 강경 조치의 배경에는 그리스 정부가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국가채무 규모를 축소했던 전과가 있기 때문이다. 유로존 국가들은 '성장 및 안정 협약'에 따라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내, 국가 부채는 GDP 대비 60% 이내로 제한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 정부는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 삭스가 고안한 통화스왑 거래를 통해 이 규제를 피해 수십 억 달러의 자금을 빌렸다.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빌린 채무가 국가부채로 계상되지 않는다는 맹점을 악용한 것이다.
채권자들의 강력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정부는 채권자들의 요구조건을 즉각 수용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그리스 정부는 EU가 유로존의 붕괴 위험을 무릅쓰고 그리스의 국가 채무 불이행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였다. 그리스 정부의 낙관론은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의 반대에 직면하였다. 개미처럼 일하는 독일 국민들은 베짱이처럼 노는 그리스 국민들을 위해서 자신들이 낸 세금이 쓰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리스 국민들 역시 복지 축소와 실업 대란에 대한 우려때문에 재정 긴축, 세금 인상, 민영화를 반대하였다. 연일 계속되는 격렬한 반대 시위와 파업 때문에 야당은 물론 여당조차 인기없는 정책을 추진하는데 머뭇거렸다. 이런 상황에 나온 고육지책이 파판드레우 총리의 신임투표였던 것이다.
지난 13일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그리스의 국가신용등급을 'B'에서 'CCC'로 3단계 하향조정하였다. 즉 국제금융시장은 그리스 경제를 불신임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 내객에 대한 신임투표의 결과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신임투표 승리는 재정위기로 촉발된 그리스 비극의 종결이 아니라 서막에 불과하다.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타협에 잠정적으로 성공하였지만, 연금이 줄어들고 실업이 증가하면 국민들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를 것이다. 경기가 빨리 회복되지 않는 한, 그리스 비극은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