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한 학생이 다음 시를 제출하였다. "-아빠랑한잔할래/무심한 일곱 글자/한참을 들여다본다//아빠는 매일 새벽 넥타이를 맨다/목숨을 바쳐 일하겠다고 말하는 듯/목넘김이 불편할 때까지 조여맨다/존재하는 그 어떤 짐승도/자기 목에 줄을 매진 않는다//아빠는 매일 새벽 집을 나선다/그 어떤 열기도 빼앗기지 않은 태양에/물소가 질주하듯 달려간다/목구덩이에는 더 이상의 여유가 없는데/아빠는 그것을 허겁지겁 삼킨다//아빠에게 차가운 보름달을 선물한다/이 달은 무거운 끈을 감싸고 /따가운 태양도 끌어안고/온통 다 녹아내린다//아빠와 나는 침묵 속에서/밤새 달 같은 이야기를 나눈다/한 잔 두 잔 서로를 다독이는데/얼굴에서 뜨뜻하게 달빛이 묻어났다" (윤솔,「막걸리」) 이 시는 실제 체험을 거의 그대로 쓴 것처럼 보인다. 딸에게 막걸리 한 잔을 하자고 문자를 보낸 아빠는 아마도 그날 상당히 힘든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이겨내기 위해 그가 가장 아끼는 딸과 막걸리 한 잔을 하자고 응급 문자를 보냈을 것이다. 딸은 보지 않는 것 같아도 넥타이를 매고 새벽에 출근하는 아빠의 모습을 눈여겨보고 있었고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노고를 다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서로가 서로에 대한 정서적 소통이 없다면 인간적 이해는 깊어지기 힘들 것이다.
그날 저녁 집에 들어와 무심코 이 이야기를 전했다. 바로 며칠 후 둘째 딸아이가 늦게 귀가한 필자에게 '아빠 술 한 잔 하자'는 것이었다. 그 날 더 이상 술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전날 이야기를 떠올리며 술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동안 밀린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사이에도 이렇게 이야기해야 할 일들이 많았구나 생각하며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날 수업시간에 이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전하고 과제를 하나 더 부과하였다. 자신들이 쓴 시를 모두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사인을 받아 오라고 했다. 일부 학생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대다수는 학교 과제를 핑계로 부모님에게 자신의 시를 한 번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한 구석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다음 주에 다시 학생들을 만나 들어보니 그들의 시를 보고 부모님들이 매우 자랑스러워했다는 것이 상당수 학생들의 반응이었다. 개중에는 부모님과 이와 같은 대화를 처음 했다는 학생도 있었고 몇 달 동안 서로 대화를 하지 않다가 이를 계기로 다시 말문을 열고 싶다는 학생도 있었다. 마지막 종강 시간에 학생들에게 이야기했다. 시의 궁극적인 목표는 소통에 있다. 소통이 시의 전부는 아니지만 일차적으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소통되지 않는 시는 시가 아니다. 시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시작한다. 우리들이 지금 여기에서 살고 있는 현장에서 우러나오는 경험이 진정한 시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사회 도처가 소통 불능의 상황에서 진정한 소통은 자녀들과의 대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육 현장에서도 교사와 학생 사이에 제대로 된 소통이 없다면 교육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대화 없는 단절과 불화가 키운 난장에서 지식 경쟁만을 위해 성장한 청소년들이 10년이나 20년 후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세대가 된다고 생각하면 그 때 우리는 인내심을 넘어선 갈등의 폭발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아쉬운 대화와 소통은 시처럼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라 강조해 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