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세 번째 도전 끝에 마침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면서 하계 올림픽과 월드컵 등 대형 국제 스포츠 이벤트를 모두 경험하는 진정한 스포츠 강국으로 거듭나게 됐다.
우리나라는 1988년 서울 올림픽과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2002년 한·일 월드컵과 부산 아시안게임 등 굵직한 하계 스포츠 행사를 수차례 치렀다.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동계 종목에서도 마침내 올림픽을 개최하게 되면서 그동안 국제 스포츠계에서 쌓아온 위상이 '허상'이 아니었음을 깨끗하게 입증했다.
한국 스포츠가 국제무대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새긴 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다.
한국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에서 양정모가 따낸 최초 올림픽 금메달을 시작으로 조금씩 국제무대에 존재감을 심어왔지만 서울 올림픽 이전까지는 한국전쟁을 겪은 가난한 분단국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이런 상황에서 1981년 9월30일 독일 바덴바덴에서 열린 제84차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서울이 열세라는 예상을 깨고 일본의 나고야를 52-27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따돌리고 제24회 올림픽(1988년) 개최지로 선정되면서 한국 스포츠는 세계로 뻗어나갈 기회를 얻었다.
국민적 지지기반이 취약했던 당시 5공 군사정권이 민주화 요구를 외부로 돌리기 위한 정치적인 계산이 깔렸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급속한 경제 성장을 바탕으로 올림픽을 유치하고 성공적으로 치러낸 것은 국가적인 쾌거임이 틀림없었다.
7년간의 준비를 거쳐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올림픽이라는 한마당 축제를 성대히 마무리하면서 국민 의식도 한 단계 성숙해졌고 세계인 역시 한국을 재평가했다.
서울올림픽 유치와 개최 성공에서 자신을 얻은 한국은 1990년대 들어 대형 국제스포츠 행사 유치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1997년 무주 동계유니버시아드, 1999년 강원 동계 아시안게임, 2002년 한·일 월드컵과 부산 아시안게임 등이 그 시절의 성과다.
그러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던 한국 체육은 2003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이후 이렇다 할 스포츠 이벤트를 경험하지 못했다.
여기에 평창이 2010년, 2014년 동계 올림픽 유치에 연이어 실패하면서 국제 스포츠 외교 무대에서 위상 추락을 절감했다.
그나마 다행으로 2007년에 올해 대구에서 열리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와 2014년 인천 하계아시안게임 개최권을 얻긴 했다.
육상 세계선수권대회는 종합 대회는 아니지만 단일 종목 선수권 대회 중에서 참가국 수와 인원 등 규모가 크기 때문에 하계·동계올림픽 및 월드컵 축구대회와 더불어 4대 국제 스포츠 이벤트에 든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1988년 서울 올림픽,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이어 국제적인 4대 스포츠 행사를 모두 유치한 국가가 됐다.
4대 스포츠 행사를 유치해 '그랜드 슬램' 국가의 반열에 오른 것은 우리나라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러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6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