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큰 손 'CJ E&M'이 내세운 올여름 첫 블록버스터 영화가 '퀵'이라는 점은 다소 의외다. 스크린에는 돈 쓴 흔적이 넘쳐나지만 영화에 흐르는 정서는 저예산 B급이라는 점에서다.
제작자로 나선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과 '뚝방전설'의 조범구 감독(연출)은 우직한 드라마 대신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와 허를 찌르는 지저분한 코미디, 잡생각의 틈입을 방해하는 볼거리로 괴이한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냈다.
고교시절 전설적인 폭주족으로 이름을 날린 기수(이민기). 전공(?)을 살려 퀵서비스맨이 된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폭탄물을 배달한다.
갑작스레 밀려드는 주문에 평소와는 다른 흐름을 감지한 기수는 생방송 시간에 쫓겨 퀵서비스를 이용하게된 아이돌 가수 아롬(강예원)을 만나고, 그녀가 고교때 여자친구였던 춘심이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아롬을 방송국으로 배달(?)하려는 순간, 기수는 헬멧에 폭탄이 장착돼 있다는 경고와 함께 30분안에 주어진 미션을 완수하라는 전화를 받는다.
순제작비만 80억원을 사용한 씀씀이를 스크린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화 후반 LPG 통이 도로 한복판으로 쏟아지며 발생하는 연쇄 추돌사고, 심심할 때마다 한 번씩 터지는 건물 폭파 등 통 큰 볼거리는 이 영화가 내세운 무기 중 하나다.
실감 나는 액션 장면을 위해 70여대의 중고 차량이 파손되고 30여대의 오토바이가 부서졌다고 한다. 제작진은 아울러 가속 질주하는 오토바이의 움직임을 세밀히 포착하기 위해 시속 170㎞로 달리며 찍을 수 있는 스패로우 200 카메라 등 특수 장비도 할리우드에서 도입했다. 치열했던 현장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의 '과격한' 스턴트맨의 액션도 영화를 살리는 데 한몫한다.
이처럼 외양만 따져봤을 때 '퀵'은 오롯이 블록버스터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의 재미난 지점은 외피는 블록버스터로 가져가면서 영화적 태도는 B급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한껏 과장돼 있고, '헬멧 샤워'처럼 예상치 못한 기발한 아이디어가 영화 곳곳에 포진해 있다. 세련된 카메라 기교가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흘러간 뽕짝 리듬의 음악이 그 기교를 압도해 버리기도 한다.
아롬의 '헬멧 샤워' 장면이나 기수와 필생의 맞수였던 교통경찰 명식(김인권)이 얼굴을 맞는 장면은 두고두고 웃을만하다.
배우들의 연기는 어색함을 무기로 한다. 특히 이민기와 강예원의 과장된 연기는 1970년대 한국 멜로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어색함을 그대로 살려냈다. 저우싱츠(周星馳) 영화에서 보이는 생뚱맞은 표정 연기도 참고한 듯 보인다.
대신 명식 역의 김인권과 폭발 사고를 조사하는 서형사 역의 고창석, 서형사의 상사 김팀장 역의 주진모 등 조연들의 코미디는 정통파에 가까워 주연들의 어색한 연기를 보충한다.
스토리의 우직한 맛은 떨어지는 편이다. 촘촘한 이야기 전개 방식보다는'치고 빠지는 식'의 정리되지 않는 유머와 웃기는 대사들이 영화의 빈틈을 채운다. 저우싱츠 등 B급 영화의 문법에 익숙한 관객들과 '개그콘서트'를 즐기는 젊은 층은 흥미롭게 볼만하다. 상영시간은 115분이다.
7월2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