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했죠. 지금도 그 때만 생각하면…."

3년 전 정체불명의 날벌레떼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인천 송도의 한 아파트 주민 김희경(가명, 39·여)씨는 "다들 마음 고생이 심했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는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며 "무슨 해를 끼칠지 모르는 날벌레가 집안에 들끓는데, 그 심정이 어땠겠느냐"고 말하곤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입주가 한창이던 지난 2008년 6월4일, 김씨가 사는 송도 B아파트 ○○○동○○○호에서 붙박이장 해체 작업이 진행됐다. 벌레떼의 진원지로 추정되던 문제의 붙박이장을 뜯어내자 현장에 있던 주민들은 물론 시행사와 아파트를 시공한 건설업체 직원, 가구업체 인부들도 믿지 못할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붙박이장 뒷면에 덧댄 목자재 PB(파티클보드)에 죽은 날벌레가 잔뜩 쌓여 있었고, PB 절단면의 크고 작은 틈 사이에는 날벌레의 유충과 알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벌레떼가 기생해 온 진원지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 지난 2008년 6월 정체불명의 날벌레떼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던 인천 송도의 한 아파트에서 방역요원들이 벌레 퇴치 방역을 벌이고 있다. /경인일보 DB

당시 현장을 둘러본 한국곤충응용학회의 한 연구원은 국내 학계에 보고된 적 없는 혹파리의 한 종(種)으로 수차례 교미과정을 거쳐 번식을 해 왔던 것으로 추정했다. 붙박이장 뒷면에 발생한 곰팡이는 이 날벌레떼의 먹이로 지목됐다. 그는 "입주가 시작된 뒤 난방을 하면서 날벌레가 들끓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온대기후가 아닌 열대기후에서 서식하는 외래종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목재업계는 붙박이장에 쓰인 PB 제품의 원산지가 열대기후인 태국 등 동남아 지역 국가에서 들여온 수입제품인 것에 주목했다. 시행사와 시공사가 책임 공방을 벌이는 사이 충남의 한 아파트에도 동일한 벌레떼가 출몰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아파트를 시공한 건설업체와 붙박이장을 납품한 가구업체가 같은 곳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됐다.

안상수 전 인천시장은 급기야 "이른 시일 내에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수립하라"는 지시를 내리기까지 했다. 경인일보를 통해 '송도 벌레떼 사건'이 알려진 뒤 시공사가 다른 인천 계양구 이화동의 한 아파트에서도 '유사한 날벌레떼가 집안에 득실거린다'는 민원이 빗발쳤다. 이 아파트에 나타난 날벌레떼는 샘플조사 결과 동일종으로 판명됐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인천의 다른 아파트 주민들까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붙박이장을 살피는 등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송도 벌레떼 사건'은 국내 곤충학계와 방역당국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학계에 보고된 적 없는 종일뿐더러 전 세계적으로도 날벌레떼가 야외가 아닌 아파트 내부에 집단적으로 발생한 사례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계는 이 날벌레떼가 어떤 종류이고, 왜 발생했는지, 그리고 건강에 해가 되는 것은 아닌지 속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송도 벌레떼 사건'은 그렇게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임승재기자